킥보드 경주는 오해를 낳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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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
나에게는 초등학교 저학년에 재학 중인 조카 O가 있다. O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이미 어른이었다. 어느 정도냐 하면 몇 살 터울의 동생이 짓궂게 굴어도 다 참아주다가 원형탈모증이 생겼는데 보다 못한 엄마(나에겐 언니)가 너도 맞고 있지만 말고 동생을 때리라고 말하니 O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동생을 어떻게 때려.”
미취학 어린이의 대답에 언니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결국 O는 하루 두 번 정수리에 탈모약을 바르는 신세가 됐다.
어느 날 언니가 아이들을 데리고 우리 동네를 찾았다. 우리 집 근처에는 커다란 공원이 하나 있어서 조카들의 체력을 소진시키기 딱 좋았다. 나는 O의 손을 잡고 공원을 걸으며 요즘 학교생활이 어떤지를 물었다. O는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있었는데 최근 멀어져 속상하다고 말했다. 친구는 이유도 말해주지 않고 조카를 멀리하는 듯했다. 나는 친구와 멀어지는 일은 어른도 많이 겪고, 나이를 먹어도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라고 답했다. 그러니 어떤 친구든 친하게 지내는 동안만큼은 신나게 놀라고 말했지만 실은 나조차도 이 답이 맞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렇게 서로 비밀을 이야기하다 보니 공원 중심부에 도착했다. 우리는 배드민턴도 치고, 강아지도 보고, 줄넘기도 하고 놀았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내가 땀을 너무 흘리니 형부가 나와 배턴터치해 조카들을 상대했고, 나는 언니와 자리에 앉아 떨어지는 체력을 한탄하며 이따금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곧 O도 땀을 뻘뻘 흘리며 다가와 내 옆에 앉았다. 나는 O에게 사과주스를 주고 손으로 부채질을 해주었다. 형부는 O가 두고 간 킥보드를 타며 둘째 조카와 경주를 시작했다.
둘은 공원 테두리를 따라 맹렬하게 질주했다. 나는 조그마한 킥보드를 타고 공원을 누비는 형부를 보며 ‘아이를 키우려면 관심 없는 킥보드를 타기 위해 없는 체력을 길어 와야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 순간, O가 내게 말했다.
“나는 킥보드 경주를 할 때마다 아빠는 우리한테 져주는 거 알아.”
뭐라고? 나는 귀를 의심했다. 무엇이 이 아이를 이렇게나 빨리 어른으로 만들었을까. 나는 O의 동심을 조금이라도 더 잡아둘 방법을 찾기 위해 시간을 끌기 시작했다.
“너는 그걸 어떻게 알았는데?”
조카는 형부와 동생을 우두커니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세어봤어.”
아아, 통계는 이길 수가 없다. 그런데 이 아이는 통계가 뭔지를 벌써 아나? 나는 거듭 놀란 나머지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우리가 킥보드로 경주할 때마다 아빠가 몇 등을 하는지 세어봤어. 거의 내가 1등이고 아빠는 이길 수 있는데도 마지막 순간에 늘 꼴찌로 들어왔어.”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물었다.
“어… 아빠는 그럼 왜 늘 꼴찌를 했을까?”
“동생이 우니까.”
…너는 왜 이렇게 빨리 어른이 되려는 거니. 나는 마음속으로 두 손을 들었다. 무슨 말을 하든 O를 속일 수는 없을 듯했다. 둘째로 태어난 나는 첫째인 너의 삶을 평생 이해하지 못하겠지. 나는 실제로 한쪽 팔을 들어서 O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 순간 O가 말했다.
“동생이 꼴찌해서 울면 아빠도 킥보드를 못 타잖아. 아빠는 킥보드를 계속 타고 싶으니까 꼴찌만 하는 거야.”
나는 이를 꽉 깨물었다.
김은경 출판 기획 에디터 겸 작가_ 12년 차 에디터. 를 썼다. 2022년에는 ‘성장’과 ‘실행’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해볼 예정이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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