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자체가 낭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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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서 노래 ‘낭만에 대하여’(1995년) 이후 ‘낭만’은 우리에게 비로소 대중적인 언어가 됐다고 말했다. 대중성을 획득했다고 썼다.
‘대중적’이라 함은 결국 한 시대에서 남녀, 노소, 신분, 빈부와 관계없이 많은 이에게 친근해졌다는 뜻이다. 소수만을 겨냥하거나 소수만이 누리는 고급한 게 아니라 사회 구성원 전체의 정서에 크게 거스르지 않는 것이다. 파퓰러(popular)한 것이다. 그것은 어떤 현상(트렌드)일 수도 있고, 특정한 문화일 수도 있다. 클래식의 대척점에는 ‘대중가요’ ‘성인 가요’가 있고, 순수문화의 저편에는 ‘대중문화’가 존재하는 것이다.
낭만이란 무언가? 사전적 풀이는 ‘현실에 매이지 않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심리’ 또는 ‘감미롭고 감상적인 분위기’다. 그래서 모든 추억과 시간의 흐름은 어떤 의미에서 낭만적이다. ‘다시 못 올 것’, ‘잃어버린 것’ ‘달콤한 실연’ 같은 것이다.
이 노래는 낭만이 청춘의 전유물이 아님을, 중장년에게도 낭만이란 정서가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기도 했다. 다만 중년의 낭만은 색깔이 조금 다르다. 청춘의 낭만이 자유롭고 눈부시다면, 중년의 낭만은 페이소스(비애)와 멜랑콜리(우울)라는 감상에 닿아 있다.
이 노래 제목은 노랫말 끝에서 왔다. 최백호는 어느 인터뷰에서 맨 처음 가사를 쓸 때는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로 끝냈는데, 어느 순간 ‘낭만에 대하여’라는 말이 번뜻 떠올랐다고 했다.
산업화 시대의 주역이었던 중장년의 고단한 삶과 회한을 ‘낭만’이라는 단어로 위무한 것은 신의 한 수다. 최백호는 낭만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삶 자체가 낭만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빼어난 싱어송라이터다. 그가 가사를 쓰고 노래를 만든 ‘낭만에 대하여’는 1995년 1월 그의 정규 앨범 ‘열여섯번째 이야기’에 실렸다. 총 8곡 중 6곡이 그의 창작곡이다.
최백호는 “가수가 노래를 만나는 일은 뭔가 운명처럼 세팅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의 말을 빌면 ‘낭만에 대하여’는 집에서 기타를 만지다가 설거지하던 아내의 모습을 보고 우연히 악상이 떠올라 만든 노래다. ‘내 첫사랑도 어딘가에서 저렇게 설거지를 하고 있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문득 부산 동래시장 허름한 다방에서 듣던 선율이 생각났다. 1971년 군 복무 1년 만에 결핵으로 의병제대한 그는 비를 피하기 위해 허름한 2층 다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에이스 캐논의 색소폰 연주곡 ‘로라’를 들었다.
지금은 중년의 애창곡 앞 순위에 들지만, 발표 당시엔 외면 받았다. 1995년 정초에 앨범을 발매한 후 1년 반이 넘도록 하루에 평균 한 장도 팔리지 않았다.
1996년 8월 22일 KBS 9시 뉴스의 한 대목이다.
“KBS 인기드라마 ‘목욕탕집 남자들’에 삽입된 ‘낭만에 대하여’라는 노래가 최근 중년 남성들 사이에 선풍적 인기를 모으고 있습니다. 이 노래는 각박한 세상사 속에서 점차 중심에서 밀려나는 중년들의 서글픔을 잘 표현해서 중년남성들의 공감을 사고 있습니다…다시 못 올 청춘과 첫사랑을 추억하는, 가장이 울적할 때 흥얼거리는 가락 속에는 중년의 쓸쓸함이 짙게 배여 있습니다.”
이 드라마 작가 김수현은 어느 날 차 안에서 우연히 이 노래를 듣는다. 다음날 바로 대본에 삽입하고 가장으로 나오는 배우 장용에게 부르게 했다. 김수현은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라는 가사에 단숨에 반했다고 한다.
35만 장이 팔려나갔다. IMF를 목전에 둔 때였다. 최백호의 제2의 전성기가 시작됐다. 45세 나이에 이처럼 큰 히트를 기록한 가수는 거의 없다.
노래의 운명은 팔자다. 전편에 쓴 임주리의 ‘립스틱 짙게 바르고’도 그랬다. 발매 6년 후에 MBC 드라마 ‘엄마의 바다’에서 주인공 김혜자가 이 노래를 부르면서 역주행이 가요계를 강타했다.
‘낭만에 대하여’는 세월이 흘러도 중장년의 반응은 오히려 뜨거워졌다. 가사가 주는 위안의 힘이었다. 노래의 궁극적 목적은 결국 영혼의 위안이 아닐까.
이 곡은 최백호의 음악적 감수성을 집약한 곡이다. 평단과 대중을 사로잡을 만큼 곡의 완성도도 높다. 몸을 휘감는 탱고의 리듬은 치명적으로 가슴을 후빈다.
‘낭만에 대하여’는 아이유도 불렀고 김호중도 불렀다. 수많은 유명 가수가 이 노래를 리메이크했지만 ‘감히’ 최백호라는 이름 석 자를 뛰어넘진 못한다.
그의 음성은 삶의 무게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특이한 톤 자체가 음악이다. 거친 목소리는 애절한 기품이 있다. 때론 고음이 포효하지만 허망한 여운을 남긴다.
무대 위의 그는 슬퍼 보인다. 나이를 못 이긴 다소 웅크린 몸에 처진 눈, 휑한 눈빛, 반백의 머리, 운동화 차림에 해진 청바지, 후줄근한 셔츠, 초등학생처럼 차렷 자세로 서서 손은 가슴 이상 올라오지 않는다. 눈빛에는 불안함과 섬세함이 엿보인다. 그에겐 교언영색도, 허장성세도, 허풍도, 엄살도 없다.
최백호는 고향인 부산 라이브카페에서 생계를 위해 기타 치며 노래한 무명 가수였다. 대학 문전에도 안가고 노래를 독학했다. 부산 동향인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를 부른 가수 하수영의 소개로 서라벌레코드에 발탁돼 작곡가 최종혁을 만난다. 그에게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써놓은 가사를 보여주니 바로 노래로 만들어주었다고 한다.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로 시작하는 명곡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다. 이 노래로 MBC 신인가수상을 받았다. 그의 나이 스물 일곱이었다.
그에겐 결핍이 있다. 정치를 했던 아버지는 태어난 지 5개월 만에, 초등학교 교사 후 장사를 했던 어머니는 스무 살에 세상을 떴다. 당대의 최고 탤런트 고 김자옥과 결혼 3년 만에 이혼하고 콘트라베이스를 전공한 열 살 연하 지금의 아내 손소인을 만나 처가가 있는 로스앤젤레스에 이민 가서 2년여 한인방송 라디오코리아 DJ를 하다 귀국했다. 그의 파란한 인생이 그의 노래에 우수를 입혔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낭만’이란 단어로 돌아간다. 우리에게 ‘낭만’이란 어떤 개념일까. 아마도 문예사조로서의 낭만주의나, 1970년대 대학생들이 기타를 메고 경춘선에 올라 엠티를 가고, 청바지, 생맥주의 청년문화쯤으로 인식되었던 게 고작이었다.
18세기 후반 유럽에선 고전주의, 계몽주의, 합리주의에 대한 반발로 낭만주의(romanticism) 사조가 태동했다. 이성과 객관, 보편보다는 인간의 감정과 욕망, 주관을 중시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1920년대 초 3·1 운동이 실패로 끝난 암울한 정서를 바탕으로 감상적이면서 퇴폐적인 낭만주의 문학이 등장했다. 시인 이상화, 소설가 김동인 등이다.
1900년대 초반 ‘로맨티시즘’이 일본에 들어왔다. 일본은 이 단어를 ‘낭만주의’로 옮겨 적었다. ‘로망’과 비슷한 한자음을 찾은 것이 ‘낭만(浪漫)’이다. 즉 ‘낭만’은 프랑스어 ‘로망(roman)’을 소리대로 적은 일본식 한자 표기인데, 이것이 이후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그대로 굳어진 것이다. 일본의 유명한 작가이자 영문학자인 나쓰메 소세키(1867-1916)가 만들었다는 설이 있다.
단어 ‘낭만’의 뿌리인 프랑스어 ‘로망(roman)’은 중세의 로망어로 씌어진 산문, 지금은 ‘장편소설’을 뜻한다. 한자를 풀이하자면 ‘물결 낭’에 ‘흩어질 만’으로 한자 자체는 특별한 의미가 없다.
최백호는 올해 데뷔 45년을 맞았다. 그가 무대에 나오면 사람들은 그의 나이를 궁금해 한다. 만 73세다. 원래 꿈은 화가였고 지금도 그림을 그린다.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는 나무만을 그린다.
그의 이름 앞에는 ‘낭만 가객’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칠순이 넘었어도 여전한 현역으로, 새까만 후배들과 콜라보하고 선배 뮤지션으로 후배들의 창작을 도왔다. 하루에도 두 시간씩 노래 연습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밤에는 14년째 SBS 러브FM 음악방송 ‘낭만시대’의 DJ로, 하루를 치열하고 로맨틱하게 살고 있다.
2012년 12년 만에 발표한 정규앨범 ‘다시 길 위에서’에 실린 ‘길 위에서’(이주엽 작사, 김종익 작곡 )는 ‘낭만에 대하여’의 속편으로 들린다. 2014~2015년 KBS 주말 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에서 자식들 때문에 속 썩던 아버지(유동근)가 이 노래를 부르며 많이 알려졌다. 이 노랫말도 참 좋다.
긴 꿈이었을까
저 아득한 세월이
거친 바람 속을 참 오래도 걸었네
긴 꿈이었다면 덧없게도 잊힐까
대답 없는 길을 나 외롭게 걸어왔네
푸른 잎들 돋고
새들 노래를 하던
뜰에 오색향기 어여쁜 시간은 지나고
고마웠어요
스쳐간 그 인연들
아름다웠던 추억에 웃으며 인사를 해야지
아직 나에게 시간이 남았다면
이 밤 외로운 술잔을 가득히 채우리
푸른 하늘 위로 웃음 날아오르고
꽃잎보다 붉던 내 젊은 시간은 지나고
기억할게요 다정한 그 얼굴들
나를 떠나는 시간과 조용히 악수를 해야지
떠나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면
이 밤 마지막 술잔에 입술을 맞추리
긴 꿈이었을까
어디만큼 왔는지
문을 열고 서니 찬 바람만 스쳐가네
◆ 한기봉 전 언론중재위원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를 했다. 파리특파원, 국제부장, 문화부장, 주간한국 편집장,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을 지냈다.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초빙교수로 언론과 글쓰기를 강의했고, 언론중재위원과 신문윤리위원을 지냈다. hkb821072@naver.com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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