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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는 숫자로 따질 수 없는 가치 지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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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일 서울 종로구 대한축구협회 축구회관에서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알림대사 발대식에서 이영표 강원FC 대표(맨 오른쪽)를 비롯한 알림대사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문화체육관광부

이영표 알림대사 인터뷰
“2002 월드컵 때 기억나죠. 대~한민국 짜작~작 짝작. 분위기 뜨면 감당 못해요.”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유치 알림대사인 이영표 강원FC 대표는 아시안컵이 유치될 경우 국내 축구열기의 점화 가능성을 이렇게 표현했다. 국내 10개 도시에서 열리는 한 달간의 축구잔치는 한국이 4강에 오르고 결승까지 진출하면 뜨겁게 달아오를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대표는 “2002 한일월드컵 때 누가 상상을 했겠는가. 하지만 우리나라가 성적을 내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정치권에서는 여야도 없었고 박수와 환호와 ‘대~한민국’의 연호가 있었다. 엄청난 축구 열기는 스포츠를 통한 국민 통합뿐 아니라 축구발전에도 기여를 했다”고 돌아봤다.
당시 국민적 열기는 역사상 보기 드물게 ‘열린 광장’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남녀노소와 도시농촌을 가리지 않은 전국적 규모의 응원물결이 펼쳐졌다.
이 대표는 “우리나라가 내년 아시안컵에서 8강이나 4강, 결승에 진출하고 그 과정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일본, 중국, 이란 등 강호와 만나면 2002 한일월드컵에서 봤던 축제 열기가 폭발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아시아 최고 선수들의 기술 경연장
그동안 국내 축구팬들에게 아시안컵의 위상은 높지 않았다. 1~2회 대회를 우리나라가 제패했지만 본선 출전국은 4개에 불과했다. 이후 참가국이 늘어났지만 유럽축구챔피언십(유로대회), 남미축구챔피언십(코파아메리카) 등과 견줘볼 때 주목도는 떨어졌다.
이 대표는 “아시아 대륙의 축구 챔피언을 가리는 무척 중요한 대회가 아시안컵이다.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이 연령별 대회라면 아시안컵은 각국 A대표팀이 겨루는 전통과 권위의 무대다. 월드컵 직전에 열리는 대륙간 챔피언 대결인 컨페더레이션스컵 출전 자격을 얻기도 했다. 이제 아시안컵의 가치를 재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시아 축구의 ‘맏형’이 되려면 아시안컵 우승으로 증명해야 한다는 뜻이다.
만약 내년 대회가 우리나라에서 열리고 우리 대표팀이 정상에 오른다면 각별한 의미를 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축구팬들은 아시안컵 유치와 관련한 대한축구협회 누리소통망(SNS) 설문에서 “손흥민 있을 때 우승하자”고 답하는 등 높은 관심을 보였다.
이영표 대표는 “국내에서 많은 A매치가 열렸지만 평가전이 주류였다. 월드컵 지역예선도 안방과 원정 경기 형태였다. 하지만 아시안컵에서는 한달간 손흥민, 황희찬, 황의조, 이재성, 김민재 등 세계적인 선수를 계속 볼 수 있다. 공식대회라서 긴장감도 다르다. 일본과 호주의 유럽파 스타 선수들도 대거 찾아온다. 아시아 최고 선수들의 기술 경연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라고 말했다.
우리 대표팀은 안방 이점도 누릴 수 있다. 이 대표는 “공은 둥글지만 2002 한일월드컵 때처럼 홈에서 경기를 하면 유리하다. 안방 팬들의 응원은 부담이 아니라 동기부여이고 에너지가 된다. 10개 도시 대부분이 축구팀을 갖고 있어 관중 확보에도 유리하다. 경기장에 울리는 함성은 선수들에게 큰 힘을 준다”고 설명했다.
A매치 127경기에 출장한 이영표 대표의 말은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어서 무게감이 있다. 그는 2000년 레바논에서 열리는 아시안컵에 처음 출전했고 2004년 중국, 2007년 베트남 등 동남아 4개국, 2011년 카타르 대회까지 출전한 뒤 은퇴했다. 승패의 명암에 웃고 울었고 다양한 에피소드도 겪었다.

“아시안컵 유치해 2002 감동 맛봤으면”
특히 2000년 베이루트에서 열린 레바논 아시안컵은 잊을 수 없다. 이 대표는 “내전 중인 나라에서 대회를 했다. 훈련장에서 경기장에 갈 때 군인들이 보호했고 도로 옆 건물들은 총탄과 포탄 자국이 수두룩했다. 아무 것도 모른 채 가서 무장군인에 둘러싸여 연습 훈련을 했는데 정말 불안했다. 선수들도 고생 많이 했다”며 웃었다. 당시 대회에서 4강에 오른 우리나라는 사우디에 졌지만 3~4위전에서 중국을 이겼다.
가장 아쉬운 경기로는 2011년 카타르 대회의 4강전을 꼽았다. 우리나라는 일본과 2-2로 비겨 승부차기에 들어갔지만 졌고 3~4위전에서 우즈베키스탄을 3-2로 꺾어 3위에 만족해야 했다.
이 대표는 “8강전에서 난적 이란을 꺾고 4강에 올랐지만 결승에 오르지 못했다. 이상하게 아시안컵에서 4강 이상 가는 게 쉽지 않다. 우리를 만나는 팀마다 죽기 살기로 뛰는 것 같다. 우리가 우승후보여서 견제도 심하다”고 짚었다.
이 대표는 국가대표 은퇴 뒤에도 미국프로축구 밴쿠버에서 활약했고 해설위원을 역임한 뒤 대한축구협회와 프로축구단에서 선수 때부터 준비해온 행정과 마케팅 역량을 과시하고 있다. 이런 행보의 최종 목표는 ‘축구의 행복을 더 많은 사람에게’라는 그의 신념에 압축돼 있다.
아시안컵 유치 알림대사로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축구는 숫자로 따질 수 없는 가치를 지녔다. 아시안컵이 국내에서 열려 많은 분들이 2002 한일월드컵 때처럼 하나가 되는 감동과 기쁨을 맛봤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김창금 기자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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