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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물로 방치된 어판장이 수제 맥주 성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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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시는 흉물로 방치된 어판장을 매입해 수제 맥주 체험관 ‘군산 비어포트’로 리모델링했다. 

도시재생 복합 성공 사례 군산 째보선창
째보선창은 일제강점기부터 전북 군산 포구 가운데 가장 흥했던 곳이다. 째보선창에서 만난 군산시 먹거리정책과 이선우 주무관은 “이 항구와 저기 보이는 등대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쌀을 수탈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며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여기 곡물 창고와 철도가 있었고 항구에는 안강망 어선들이 즐비했다”고 기억했다.
1970년대 외항 등이 생기면서 쇠락한 이곳에 새로운 관광 명소가 들어섰다. 흉물로 방치된 어판장을 군산시가 매입해 새 단장한 수제 맥주 체험관 ‘군산 비어포트’다. 안으로 들어서자 1155㎡의 광활한 실내 공간이 나타났다. 170개의 좌석 간격도 넓어 옆 손님을 신경 쓰지 않고 편안한 술자리가 가능해 보였다.
한쪽에는 G3크래프트비어, 래프트월명, 드마라틱브루잉, 메인쿤브루잉 등 4개 업체의 매장이 푸드코트처럼 모여 있다. 매장마다 3~6가지씩 모두 15가지 수제 맥주를 맛볼 수 있다. 피자, 햄버거, 치킨, 파스타 등 매장마다 특색 있는 안주를 자유롭게 고를 수 있어 ‘맥덕(맥주 덕후)’에게는 행복한 고민을 안겨줄 것 같았다.
창업자가 30대 초중반인 다른 업체와 달리 40·50대 3명이 창업한 G3크래프트비어는 ‘만월 스타우트’, ‘삼오 바이젠’, ‘동백꽃 라거’ 등 6가지 수제 맥주를 판매하고 있었다. G3크래프트비어 공동 창업자인 이춘우(49) 씨는 “만월 고무신이라고 큰 고무신 공장이 일제강점기부터 군산에 있었다”며 “스타우트가 흑맥주라 깜장 고무신이 연상돼 삼월로 이름을 지었다”고 말했다. 삼오는 3·1운동 직후 군산에서 일어난 3·5만세운동에서 따왔고 동백꽃은 군산의 시화다. 진정석(49) G3크래프트비어 대표는 “G3라는 이름도 군산 사람, 군산 물, 군산 보리에서 따왔다”고 했다.

▶1155㎡의 실내 공간 한쪽에 4개 업체의 매장이 푸드코트처럼 모여 있다.

국산 맥아로 만든 로컬 수제 맥주
반대쪽에는 유리벽 너머로 양조장이 보였다. 맥주보리를 싹 틔운 맥아를 직접 발효시켜 연간 18종의 맥주 130톤을 생산할 수 있는 규모다.
이날은 양조장에서 G3크래프트비어 직원들이 맥주 보관 통(케그)을 씻고 있었다. 이춘우 씨는 “한 달 넘게 발효시킨 맥주를 오늘 탄산 통으로 옮겨 탄산을 주입한 상태”라며 “하루 정도 뒀다가 케그로 옮기는 작업을 할 예정”이라고 했다. 갓 나온 밀맥주 바이젠을 맛보자 맥주를 즐기지 않는 기자의 입에도 기성 맥주보다 부드럽고 깊은 맛이 느껴졌다. 흑맥주 스타우트는 쓴맛이 덜하고 고소했다.
세척 작업을 지켜보던 이선우 주무관이 직원들에게 “온수 온도를 90℃에 맞추는 업체가 있던데 살균용이 아니기 때문에 60℃ 정도면 된다”고 조언했다. 그는 기자에게 “먼저 온수와 세제로 세척한 다음 스팀으로 살균하는 과정이 또 있다”며 “세척·살균한 케그에 이산화탄소를 채우면 맥주 담을 준비가 모두 끝나게 된다”고 설명했다.
기자가 “이선우 주무관도 맥주 전문가네요”라고 감탄하자 직원들이 “군산 맥주의 아버지”, “아니, 시조새”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이 주무관은 2015년부터 군산시의 맥주 사업 계획을 준비했다. 군산시가 수제 맥주의 성장 잠재력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보리를 재배하는 농민을 위해 새로운 소비시장을 창출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소주도 마찬가지지만 보리와 물로 만드는 맥주는 진짜 100% 농업”이라며 “세계 곡물의 가장 큰 소비시장이 술임에도 우리나라 주류 산업은 우리 농업과 연계가 잘 안 돼 있다”고 아쉬워했다.
현재 국내 수제 맥주 업체들은 전량 수입산 맥아에 의존하고 있다. 대형 맥주 업체 한 곳만 자가소비용으로 국산 맥아를 소량 재배해 사용할 뿐 다른 주류업체에 공급하기 위해 상업적으로 생산하는 맥아는 군산이 유일하다.
이 주무관은 “군산 비어포트는 국내 유일의 진짜 오리지널 로컬 맥주를 만드는 곳”이라며 “군산 맥아를 제품 생산에 사용하려고 검토하는 주류업체가 몇 곳 있다. 2022년 하반기쯤이면 군산 맥아로 만든 몰트위스키를 맛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군산시의 궁극적 목적은 도시브랜드를 창출하는 것이다. 그는 “지역농업, 청년창업, 도시재생을 연계해 ‘대한민국 수제 맥주 1번지’라는 도시브랜드를 만들어 관광과 연계하려 한다”며 “2022년 9월 군산 맥주 축제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비어포트 옥상에서 내려다본 째보선창.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등대가 보인다.

교육부터 창업까지 4년 걸려
군산시는 2017년부터 정부 예산을 확보해 맥아 제조시설을 구축하기 시작했고 2019년에는 지역 원료로 로컬 맥주를 만들 청년들을 모집했다. 다국적 맥주 회사에서 아시아·태평양 총괄 품질관리 임원까지 역임한 맥주 전문가가 10개월 동안 50여 명을 교육했다.
비어포트 창업자 9명 모두 이 교육을 받았다. 이춘우 씨와 함께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던 진정석 대표는 “군산의 관광 코스가 대부분 거쳐가는 관광”이라며 “관광객의 숙박을 유도하기에 군산이 부족한 게 바로 술이었다”고 했다.
교육을 마친 진정석 대표는 수제 맥주 공장을 차리고 싶었지만 150여 개 양조장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상황이었다. 마침 군산시가 비어포트 운영자를 모집한다는 공고가 떴다.
“매장이며 양조장이며 군산시에서 다 한 거지 않습니까. 일반 소상공인은 이렇게 할 수가 없잖아요. 시설과 공간 임대료도 저렴하니 정말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2020년 4월 비어포트 운영자로 선정된 4개 팀 9명은 이선우 주무관과 매주 회의하며 양조 시설부터 실내장식까지 비어포트 준비에 들어갔다. 그러나 양조 면허를 받기까지 행정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로웠다. 2021년 말 겨우 문을 열었지만 코로나19 환자가 늘던 때라 손님이 거의 없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전히 해제된 4월 중순부터 손님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거리두기가 풀린 그 주말에 사람들이 엄청나게 몰려왔어요. 그동안 어디를 가도 웅성거림을 느끼기 어려웠잖아요. 이런 공간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 게임 같은 자그마한 행사를 열어도 손님들의 반응이 정말 좋아요.”(진정석 대표)

▶양조장에서는 맥아를 발효시켜 연간 18종의 맥주 130톤을 생산할 수 있다.

▶이선우 주무관(왼쪽)이 G3크래프트비어 직원들과 함께 자리했다.

경쟁 아닌 상생으로 인기몰이
비어포트가 군산의 새로운 명소로 누리소통망(SNS)에 소개되면서 주말에는 관광객이 많이 방문한다. G3크래프트비어의 경우 주말에는 90~100팀의 손님이, 평일에는 30여 팀이 방문한다고 했다. 4개 업체 다 합치면 어림잡아 주말 평균 350팀은 될 것이다. 기자가 사용한 내비게이션에도 비어포트가 ‘인기 장소’로 나왔다.
특히 맥주 맛에 민감한 외국인이 자주 방문하는 것에 이선우 주무관은 고무됐다. “군산에 미군 공군기지가 있는데 주말에는 미군과 원어민 교사 등 외국인이 많이 방문한다”며 “외국인을 대상으로 홍보할까 했더니 시 공보 담당이 말하길 이미 소문이 나서 다들 비어포트를 안다고 하더라”고 했다.
4개 업체의 협업도 인기에 한몫했다. 수제 맥주 하나만 놓고 4개 매장이 나란히 있는 게 오히려 영업에 도움이 됐다. 안주는 미리 협의해 매장마다 겹치지 않게 정했다. 진정석 대표는 “같은 라거맥주라도 업체마다 맛이 다 다르다. 손님들이 이 집 저 집 맥주 맛을 보면서 다양한 안주도 시켜 먹을 수 있어 인기가 높은 것 같다”며 “아직은 경쟁보다는 상생이 더 맞는 표현”이라고 했다.
실제로 1년 6개월 동안 9명이 함께 준비하며 부족한 부분은 서로 채워주면서 개업까지 왔다. 나이 차이가 스무 살 가까이 나지만 맥주에 대해서는 진정석 대표가 후배들에게 도움받는 경우도 많다.
“부산의 맥주 공장에서 근무한 분도 있고 수제 맥주를 팔았던 분도 있어 저희가 모르는 부분은 알려주고 도와줘요. 지금까지 가장 큰 어려움은 기다림이었는데 일찍 개업했으면 코로나19에 못 버텼을 것 같아요. 쉰 살 가까운 나이에 새롭게 도전한 건데 참 좋은 기회에 잘한 것 같습니다.”

글·사진 원낙연 기자

정부, 지역가치 창업가 발굴·지원
중소벤처기업부는 지역 청년의 창업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2020년부터 ‘지역기반 로컬크리에이터 활성화 지원사업’을 통해 지역가치 창업가를 발굴하고 있다. 지역가치 창업가는 지역의 자연과 문화적 특성에 기반한 아이디어를 사업화해 가치를 창출하는 신생기업이다.
중기부는 2021년까지 모두 530개 업체를 선정했다. 2020년에 선정한 280개 업체는 2021년 평균 매출액 535억 원, 신규 고용 502명, 투자유치 174억 원을 달성했다.
2022년에는 1952개 팀이 지원했으며 이 가운데 170개 팀이 최근 선정됐다. 정부는 지원팀의 지역성, 과제의 혁신성, 성장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했다. 예비창업자 40개 팀은 최대 1000만 원씩 사업화 자금을, 기창업자 130개 팀은 최대 3000만 원씩 지원받는다.
2022년 선정된 업체들의 창업 분야는 로컬푸드(31.8%), 지역가치·거점브랜드(각 20%), 지역기반제조(12.9%), 지역특화관광(11.8%), 디지털 문화체험(2.9%) 등이다. 군산 비어포트와 마찬가지로 지역의 특산물로 술을 만드는 업체도 여럿 있다.
강원 춘천의 ‘감자아일랜드’는 지역의 특산품인 감자와 토착 효모를 사용해 지역의 특색을 담은 수제 맥주를 생산하고 관련 시설들을 체험하는 관광 명소를 구축한다. 경기 김포의 ‘독브루어리’는 경기도농업기술센터와 김포 양곡장과 협약을 통해 당일 도정한 김포 금쌀로 술을 빚어 선도가 중요한 막걸리에 상품성을 특화한다. 경북 안동의 ‘밀과노닐다’는 안동 특산품인 사과와 안동소주를 접목해 고품격 증류주인 사과소주를 개발하고 안동 맹개마을에서 전통주를 테마로 한 체험 행사를 운영한다.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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