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중추국가와 ‘평화의 한반도’ 비전 실현을 위한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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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우 경희대 국제정치학 교수/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
새 정부는 지난 5월 3일 ‘6대 국정목표와 110대 국정과제’를 통해 대한민국을 이른바 ‘자유, 평화, 번영에 기여하는 글로벌 중추국가’로 변모시켜 ‘평화의 한반도’를 이룩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새 정부가 역대 정부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과거 정부는 모두 용두사미로 임기를 마쳤기 때문이다.
새 정부의 외교 비전(글로벌 중추국)과 목표(평화의 한반도)는 전대미문의 전환적이고 시의적절한 발상의 전환에 기초한다. ‘국격’, ‘리더십’, ‘상호주의’, ‘규범’, ‘대화와 협력’, ‘기여’ 등을 강조하면서 우리의 국익을 다자협력을 통해 확충하고 타국과 ‘공동이익’을 확대하려는 결의를 비췄다.
세계의 자유, 평화, 번영에 기여하는 ‘중추국’으로 대한민국을 우뚝 세우겠다는 선언에 국민들은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다. 이제는 이런 미증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 비전을 국민들에게 소개할 때가 되었다. 그래야만 국민들이 납득하고 새 정부도 지지를 확보할 수 있다. 여기엔 정부의 전략적 사고 유무가 관건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상에서 벗어난 현실적 접근 전략만이 용두사미의 결과를 막아줄 것이다.
현실적 접근 전략으로 우선 지구촌 국제관계의 흐름, 즉 ‘판세’를 잘 읽어 내야 한다. 코로나 사태 이후 작금의 지구촌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홍역을 앓고 있다. 세계가 이중고를 겪으면서 세계 경제는 수렁에 빠질 개연성이 높아졌다. 이미 식량, 원자재, 에너지 등 경제와 산업 발전의 핵심 자원에서 공급 차질이 보인다.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사태 또한 예기된다.
이런 이유로 모든 나라의 전략 목표의 우선순위가 바뀌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기존 자원 공급체계의 기반을 흔들었다. 현재로서는 자원을 선점하는 외교가 대세다. 첨단과학기술을 중심으로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 노력이 유보되고, 생존 자원의 확보가 선두에 서고 있다. 자원 생산국 대개가 민주자유주의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국제사회는 이미 선별적 다자협력에 대한 논의를 지난 3월부터 쟁점화했다. 먹거리와 산업 동력원이라는 현실적인 국익 문제 앞에서 우리의 외교 전략도 최소하나마 일시적인 조정이 필요하다.
둘째, 글로벌 중추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니즈(needs)’를 꿰뚫어야 한다. 신념만으로 글로벌 중추국가가 될 수 없다. 외교에는 ‘다양한’ 대상이 있다. 그래서 외교 전략에서는 역지사지하는 사고가 관건이다. 그래야만 다원적인 국제사회의 요구를 충당할 수 있는 ‘맞춤형 제안(tailor-made offer)’을 글로벌 중추국가로서 내세울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새 정부가 제시한 외교 분야의 국정비전과 과제는 일방적이다. 즉, 우리의 희망으로만 가득 찼다. 상대방의 니즈를 고민해 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일례로 중동지역에 대해 “수소·보건·AI 등 미래 산업 분야에서의 협력 틀 구축·확대”를 목표로 설정했는데, 상대 역시 이를 원하는 것인지 다시금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셋째, 세계의 자유, 평화, 번영에 유례없는 기여를 하겠다는 우리 정부의 외교적 노력에 대한 대국민 설득이 필요하다. 이런 좋은 일에 무슨 다른 설명이 필요한지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외교를 추동하는 원천은 실리(국익)보다는 명분에 있다. 세계적인 현안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이 명확해야 한다. 이런 입장에는 확고한 원칙이 전제되어야 한다.
새 정부는 중추국가의 역할 목표를 “주요 분야 다자외교 리더십 확대 및 국제사회 평화안보·민주주의·인권·법치·비확산·기후변화·개발 분야 협력에 선도적 역할 수행규범 기반 국제질서 강화를 주도하면서 글로벌 중추국가 역할을 강화”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국민은 이런 세계적 사업과 현안에 우리의 혈세로 기여하면, 우리에게 어떠한 이득이 있는지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의 단편적 사례를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찾을 수 있다. 러시아 침공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에 우리는 뒤늦게 참여했다. 우크라이나 지원 문제에 있어 정부의 입장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무기 지원에서부터 재정 지원까지 입장정리가 된 것이 없다. 입장이 결정되어도 국민을 설득해야 하는 과제에 당면할 것이다.
넷째, ‘평화의 한반도’의 전제조건인 북한의 비핵화를 실질적으로 진전시킬 수 있는 책략 마련이 필요하다. 코로나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위축된 북한을 비핵화를 위한 대화의 장으로 유인할 수 있는 묘책이 요구된다. 비핵화의 실질적 진전과 평화협정 협상을 인과관계로 제시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한미 간 비핵화 로드맵 마련과 상호주의 원칙에 따른 비핵화 추진 구상도 이미 실패했다. 중국과 러시아의 역할 견인 전략도 이미 수포로 돌아간 지 오래다. “강력하고 실효적인 대북제재 유지와 안보리 결의의 철저한 이행 확보를 위한 국제 공조 강화”도 현실정치의 벽을 넘지 못한다. 새 정부가 제시한 과제에는 종래의 과오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없어 북한을 설득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또 하나, 국정과제에서 드러난 새 정부의 전략은 이분법적 틀에 갇혀 있다. 즉, 비핵화의 실질적인 진전을 전제로 대화와 보상을 지불하는 형식이다. 이는 역으로 임기 5년 내에 북한이 이런 진전을 보이지 않을 것이란 심리를 노출한 것에 불과하다.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등과 같은 경제협력이 비핵화를 견인할 수 없다는 사실이 이미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국정과제에서 제시하듯 “남북 간 상호 개방과 소통·교류 기재를 활성화하여, 북한의 점진적 변화를 유도”한 사례도 전무하다. 북한이 먹고사는 걱정의 해결을 우선시했으면 국정과제가 제시한 전략은 진작 통했을 것이다.
외교는 생물이고, 그 생물에게는 공존해야 하는 대상이 있다. 이들의 상호작용으로 발생하는 판세의 흐름에 적응하되 명확한 원칙을 가지고 대응해야 한다. 외교가 일방향이 아닌, 역지사지를 요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입장 정리는 그야말로 새 정부가 추구하는 글로벌 중추국가의 첫 시험대이다. 이 밖에 산적한 외교 현안에 있어서도 상대방의 니즈를 간파할 수 있는 외교적 지력, 통찰력, 사고력, 판단력과 설득력을 겸비해야만 새 정부의 ‘평화의 한반도’가 구현될 수 있을 것이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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