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의 과학기술 정책이 50년의 국가 경쟁력 좌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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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모 고려대학교 혁신정책연구센터장 |
새 정부가 6대 국정목표와 110대 국정과제를 발표하면서 국정철학과 방향에 대한 윤곽이 잡혀가고 있다. 과학기술은 국방·외교·복지·교육 등 국가정책의 여러 분야를 관통하는 기저 분야이며 해외 경쟁국들이 과학기술을 중심에 두고 국가 정책을 수립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방향은 그 어느 때 보다 중요하다.
새 정부가 발표한 110대 국정과제는 ‘대전환’, ‘임무중심’, ‘기술패권’, ‘민간주도’, ‘디지털 플랫폼’, ‘질적 성장’ 등의 키워드를 제시하고 있는데 향후 5년간 추진될 청사진은 제시되어 있지만 추진되어야 할 정책은 아직 구체적으로 제시되지는 않았다. 앞으로 어떠한 세부정책들이 각 키워드에 매칭되어야 하며 어떤 문제들이 해결되어야 할까?
첫 번째 핵심 키워드는 ‘대전환’이다. 이미 과학기술은 융·복합과 장르파괴를 주도하고 있다. 10년간 1조원을 투자해야 신약을 개발할 수 있다는 과학기반 장주기 산업인 제약과 가장 시장에 빠르게 대응해야 하는 응용기반 단주기 산업인 게임이 협업하여 치매나 ADHD를 치료하는 디지털 치료제를 만들어 내고 있으며 이로 인해 미국 FDA는 약물의 정의와 기준, 그리고 신약을 심사하는 방법까지 바꾸었다.
이처럼 앞으로는 과학기술이 기존의 시스템을 융합하거나 송두리째 바꾸는 혁신이 보편화 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정부도 국정운영을 과학기술 중심에 두는 시스템의 대전환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대통령실에 과학기술 수석을 두고 각 부처를 총괄할 수 있는 과학기술 부총리를 도입하는 등 거버넌스의 대대적 개편이 필요하다.
두 번째는 ‘임무중심’이다. 최근 경제·사회 문제의 중심에 있는 의제는 디지털 전환, 팬데믹, 탄소중립 등 대형 난제들인데 모두 높은 수준의 국가적 과학기술 역량을 요하는 것들이다. 과거 국가의 과학기술 정책이 개별 기술개발을 지원하는 개별적 접근이 중심이 되었다면 이제는 사회 난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는 임무중심으로 재편될 필요가 있다.
해외 선진국들도 이러한 차원에서 임무중심 R&D를 도입·추진하고 있다. 일본은 Moon shot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데 2050년까지 사이보그 기술로 육체적 장애를 극복하기나 현재의 산업폐기물을 1/100 규모로 줄이기처럼 어렵지만 실현되면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되는 사회문제 해결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도전적 연구와 파괴적 혁신을 도모하고 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임무가 무엇인지 아직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를 통해 국가적 임무의 내용과 순위를 정해야 하며 임무수행을 위한 추진 체계도 정비해야 한다. 현재의 정부부처는 업무의 분야를 기준으로 나뉘어 있지만 우리가 앞으로 정의할 임무는 국가 전체 차원의 과업이 될 수 있으므로 부처간 조율과 협업체계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 요즘은 거의 모든 부처가 R&D와 창업지원을 하고 있기 때문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정책 실타래를 지혜롭게 풀 수 있어야 임무중심형 과학기술의 실현이 가능해진다.
세 번째는 ‘기술패권’이다. 과거는 국가들이 다운스트림 즉 최종 생산물인 제품이나 서비스를 가지고 경쟁했지만, 미-중 갈등과 글로벌 경기침체 후 세계에 퍼지고 있는 우경화로 인해 갈등의 영역이 과학기술 같은 업스트림으로 옮아가고 있다.
즉, 과학기술 자체가 전략화 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과학기술이 경제는 물론 외교, 안보, 국방에까지 영향을 미치며 국가의 생존력과 주권을 좌우하게 된 것이다. 앞으로 이 같은 기술패권 구도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국가전략기술을 집중 육성하여 독립적인 과학기술역량을 확보함과 동시에 스펙트럼 넓은 과학기술 협력을 통해 우리나라 주도의 ‘과학기술 가치사슬’을 구축해야 한다.
네 번째는 ‘민간주도’이다. 정부 R&D 30조원 시대가 도래했지만 2배를 훨씬 넘는 약 75조원 이상을 민간이 투자하고 있다. 이처럼 과거와 같이 국가가 R&D의 방향성을 주도하기 어려운 구조가 되고 있다. 사실 R&D는 수월성과 유연성이 핵심인데 공정성과 절차의 정확성을 중요시하는 공공기관과 맞지 않는 부분도 많다.
따라서 민간기업이 유연하게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도록 민간의 정책의사결정 참여, 민간과 정부가 대등한 위치에서 함께 투자하는 R&D PPP 등 다양한 민간주도 R&D 추진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R&D 관리기관의 관료화를 타파하고 기업이 원하는 방식으로 정부재원이 투자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R&D 투자의 효율성을 제고해야 한다.
다섯 번째는 ‘디지털 플랫폼’이다. 새 정부가 모든 부처에 강력하게 주문하고 있는 것이 디지털 플랫폼인데 이를 위해서는 데이터 기반 행정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과학기술 분야에서의 디지털 플랫폼은 크게 정책지원과 R&D 지원 플랫폼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정책지원 플랫폼은 과학기술 정책의 과학화에 관한 것으로 데이터에 기반한 증거기반 정책수립 등이며 R&D 지원은 연구자 맞춤형 과제 추천, 빅데이터 인공지능 기반의 입체적 논문, 특허 평가 등이 될 수 있다. 디지털 과학기술 플랫폼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체계적인 원시데이터 수집과 데이터 공개가 선결되어야 하며 부처간 데이터 협업체계 구축, 공무원 등 정책입안자의 데이터 문해력 제고 등이 필요하다.
마지막 키워드는 ‘질적 성장’이다.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과학기술 분야도 지금까지 더 많이 투입할수록 더 좋은 성과가 창출될 것이라는 선형적 투입 구조를 신봉해 왔다. 그러나 기술간 융·복합, 개방형 혁신이 보편화 되며 R&D의 지형이 바뀌는 만큼 이제는 투입 뿐 아니라 질적인 성과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연구현장에서 발목을 잡는 각종 규제와 관행을 타파해야 한다. 지적 중심의 관리적 평가를 개선적 평가로 전환하고 관리에 초점이 맞춰진 R&D 관리를 지원중심으로 재편하며, 연구책임자에 대한 과감한 권한위임, 관리자의 임기 보장, 연구자의 행동에 대한 분석 등 질적 성장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어야 한다.
새 정부의 정책은 앞으로 5년간 펼쳐지겠지만 5년 동안의 정책이 앞으로 50년의 우리나라 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다. 앞으로 핵심 정책 키워드별로 신선하고 과감한 과학기술 정책이 개발되고 추진되길 기대해 본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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