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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온한 일상이 그리운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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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서 가장 평화롭고 안온했던 때는 어린 시절이다. 그 근원에는 부모님이 계셨다. 작자 미상의 ‘풍속화’를 보면 그 안온함의 내력이 세밀하게 묘사돼 있다. 초가집 안에서 남정네가 바닥에 앉아 자리를 짜고 있고 아낙네는 베틀에 앉아 베 짜기를 하고 있다. 남정네는 정면을, 아낙네는 옆면을 그려 변화를 줬고 일하는 모습이 잘 드러나도록 구도를 잡았다. 집안과 집밖은 울타리로 분리돼 있는데 사립문을 열고 나오는 어린아이를 통해 두 공간을 연결시켰다.
대문 밖에는 강아지와 닭이 놀고 있다. 문을 열자마자 아이보다 먼저 달려 나가는 강아지의 발걸음을 따라 좌측으로 시선을 옮기면 그곳에 베 매기를 하는 아낙네가 보인다. 베 매기를 끝낸 도투마리를 베틀에 걸어야 베를 짤 수 있으니 집안과 집밖에서 하는 아낙네들의 일은 서로 연결돼 있다. 베매기 하는 여인네 뒤로는 강물이 흐르고 나뭇짐을 해오는 남정네가 다리를 건너온다. 그림의 구도는 대각선으로 구성돼 있는데 우측은 무겁고 좌측은 가볍다. 우측의 무거움은 강 건너 간략하게 그려진 초가집과 나무들로 인해 안정감을 유지한다. 강가를 따라 나무꾼, 낚시꾼, 소를 타고 오는 일행을 등장시켜 그림 읽는 재미를 더했다.
그림 왼쪽 위에는 다음과 같은 화제가 적혀 있다.
‘여러 집들과 닭과 개들이 스스로 촌락을 이루었네(數家鷄犬自成村).’
이 화제는 남송사대가로 불린 육유(陸游, 1125~1210)의 시 ‘만춘(晩春)’의 한 구절이다. 화제 끝에는 ‘긍재(兢齋)’라고 적혀 있어 조선 후기 화가 김득신(金得臣, 1754~1822)의 작품임을 알 수 있다. 김득신은 육유의 시를 조선 시대의 전원풍경으로 완벽하게 그려냈다. ‘여러 집’들을 표현하기 위해 강 건너편에 초가집 두 채를 더 그렸고 닭과 개들도 대문 앞에 풀어놨다. 그밖에도 나무꾼, 낚시꾼, 소를 타고 외출에서 돌아오는 사람을 추가해 그림 속에 집들을 많이 그려넣지 않고도 ‘촌락을 이루었네’를 유추하게 만들었다.
집 주위에 자란 나무와 풀은 녹색과 청색을 엷게 칠해 여름을 향해 뻗어가는 늦봄의 싱그러움을 잘 살려냈다. 이렇게 잘 그린 그림의 작가 김득신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을 검색할 수 있는 e뮤지엄에 작자 미상이라고 적혀 있다. 하루빨리 김득신의 이름을 되찾아줬으면 한다. 김득신은 조선 후기 개성김씨 가문 출신으로 아버지 김응리, 동생 김석신과 김양신, 그리고 아들 김건종, 김수종, 김하종이 모두 화원이었다.
김득신의 ‘풍속화’는 육유의 시를 회화로 표현한 시의도(詩意圖)라는 의미 외에도 농사짓고 길쌈하는 모습을 그린 경직도(耕織圖)로도 읽을 수 있다. 시의도로 본다면 농가의 풍경을 전지적 관찰자의 시점에서 그린 듯 낭만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경직도로 본다면 나라에서 백성들에게 농사와 길쌈을 장려한 정책적인 의도가 담겨 있음을 고려하게 된다.
그러나 필자는 이 그림을 볼 때 사립문을 열고 나오는 아이가 어린 시절의 나의 모습인 듯 내 인생에서 가장 평화롭고 안온했던 시절이 떠오른다. 그때는 엄마가 얼마나 고달프게 베 짜기를 했는지, 아버지가 가정을 이끌어나가기 위해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부모님이라는 그늘 아래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그 평화롭던 시간을 갖게 해준 부모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렸어야 하는데 사느라 바빠서 그러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는 감사인사를 하고 싶어도 들어줄 부모님이 옆에 계시지 않는다.

조정육 미술평론가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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