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엮어낸 모자 제주 정동벌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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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조선을 방문했던 외국인들은 다양한 모자를 쓰는 한국인을 보고 한국을 ‘모자의 나라(the land of hats)’라고 기록했다. 명왕성을 처음 발견한 미국의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1855~1916)이 1884년 조선을 방문하고 돌아가 쓴 책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는 ‘모자의 나라로 알려진’, ‘무궁무진한 종류의 모자가 있는 나라’라는 표현이 나온다.
당시 양반계층이 착용했던 갓은 말꼬리의 말총으로 머리 부분인 총모자를 만들고 대나무를 실낱처럼 떠서 차양(양태) 부분을 만들었다. 갓은 서민은 감히 소유할 수 없는 귀한 모자였다. 반면 제주에는 목동(테우리)이나 서민들이 즐겨 쓰던 모자인 댕댕이덩굴로 만든 ‘정동벌립’이 있다. 댕댕이덩굴을 제주 서쪽에서 정동이라 불렀고 벌립은 벙거지를 뜻하는 제주어다. 제주 중산간에서 자생하는 댕댕이덩굴은 가늘고 질겨 모자 외에도 삼태기, 바구니, 채반 등 여러 가지 생활용품을 만드는 유용한 원자재였다.
‘정동벌립’은 제주의 따가운 햇볕과 거친 비바람을 막아주고 곶자왈의 가시덤불도 뚫고 지나갈 수 있는 방패 같은 모자다. ‘정동벌립’ 하나를 만들려면 최소 15일에서 20일이 걸린다고 한다. 벌립은 크게 상판뜨기, 옆면, 차양 순서로 이어진다. 첫 번째 공정인 상판뜨기는 가마귀방석(불가사리를 뜻하는 제주어)이라 부르는데 모자의 정수리 부분에 해당한다. 엮임이 단단하고 정교해서 오랜 세월이 지나도 형태가 변하지 않는다.
제주도 무형문화재 제8호 정동벌립장 전승교육자이자 정동공예 대한명인 홍양숙(64) 명인이 1979년, 하루 17~19시간씩 쉼 없이 작업해 23일 걸려 만들었다는 ‘정동벌립’의 상판 부분이다. 억센 풀로 촘촘하게 엮어낸 작품에서 한 땀 한 땀 인내의 시간과 정성이 느껴진다.
강형원
1963년 한국에서 태어나 1975년 미국 캘리포니아주로 이민했다. UCLA를 졸업한 뒤 LA타임스, AP통신, 백악관 사진부, 로이터통신 등에서 33년간 사진기자로 근무했고 언론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퓰리처상을 2회 수상했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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