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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경제 리부팅,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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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빈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안재빈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으레 나타나곤 하는 경제 상황에 대한 허니문 효과를 기대조차 하기 어려울 만큼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대내외 경제여건은 녹록하지 않다. 코로나19 위기 대응 과정에서 각 국의 대규모 확장 재정 및 통화정책을 통해 급격히 늘어난 글로벌 유동성은 예상보다 빠른 백신의 보급 등으로 인해 경기회복 속도가 앞당겨 지면서 물가를 자극하게 되었고, 예기치 않은 글로벌 공급망 병목 현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지정학적 요인들이 더해진 결과 미국 등 주요 국가들의 인플레이션은 근 40년래 최고 수준을 기록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대응하기 위한 미국 연방준비은행의 통화정책 정상화 및 긴축전환에 따른 글로벌 유동성 축소는 한국을 비롯한 신흥시장국들에서 자본유출과 통화가치 하락을 유발하면서 국내 인플레이션은 물론 외환시장 변동성마저 증폭시키고 있다. 한국은행으로서도 물가안정과 자본유출 방지를 위한 고육지책으로 올해 들어서만 세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등 선제적으로 통화정책을 운용함에 따라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 또한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와 같은 최악의 여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성공적인 경제 정책 수행을 위한 필요조건일 뿐, 보다 구조적인 한국 경제의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지 않고서는 정부는 소임을 다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새 정부 경제팀의 어깨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울 수밖에 없다.

우리 앞에 놓인 산적한 난제 중에서도 가장 근본적인 도전과제로는 실물부문의 저성장 고착화 현상을 들 수 있다. 일례로, 지난 연말 한국경제학회 정회원들의 투표를 통해 ‘한국경제의 7대 과제’를 선정한 결과, 생산성 향상·잠재성장률 제고 등 저성장 탈피를 위한 2개 과제가 함께 포함된 바 있다.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처음 명명한대로 한국 경제의 장기성장률은 매 5년마다 1%포인트씩 감소하는 ‘5년 1%포인트 하락의 법칙’을 따르면서 이미 연평균 2% 초반의 저성장시대에 진입해 있다. 특단의 정책 변화가 수반되지 못할 경우 5년 후 한국의 장기성장률이 1%대 이하로 떨어지리라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국정비전과 목표가 담긴 ‘국민께 드리는 20개 약속’ 및 ‘110대 국정과제’에 따르면, 새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라는 기치 하에 ‘민간의 창의와 활력을 기반으로 하는 경제시스템으로의 전환’을 제시하고 있다. 과거 기술추격형 성장 전략에서는 ‘정부주도성장’이 효율적이었을 수 있으나, 앞으로의 기술선도형 성장 전략에서는 ‘민간주도성장’을 지향해야 한다는 당시 후보자의 기본철학과 공약들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로 평가된다. 대선 기간 내내 줄곧 강조해 온 ‘기업들의 발목을 잡는 모래주머니를 벗기겠다’는 의중과도 궤를 같이 한다.

국정목표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의 세부 추진 국정과제 목록.

국정목표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의 세부 추진 국정과제 목록.

어쩌면 굳이 따로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일 뿐이다. 정부는 정부대로, 민간은 민간대로, 각자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기업은 기본적으로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존재한다. 이윤을 남기지 못하면 퇴출된다. 적자생존이 지배하는 기업생태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성장해야 한다. 생산성 향상은 기업에게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일자리가 창출되고 국민경제가 발전하게 된다. 민간이 역동적 경제를 끌어가야 하는 이유이다.

정부의 역할은 민간이 활발하게 4차 산업혁명의 등에 올라타 역동적 혁신성장을 이끌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고 적극 지원하는 한편, 민간이 하지 못하는 부문에 집중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공정경쟁 질서를 확립하는 한편, R&D 및 금융 지원, 디지털 전환을 위한 데이터 인프라 확충, 창의적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제도 혁신 등을 통해 민간이 끌어가는 혁신 성장을 위한 기반을 확고히 마련해 주어야 한다. 또한 규제를 혁파하고 세제 지원을 확대하는 등 기업들의 발목을 잡는 모래주머니 벗기기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민간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국제 이슈들에 있어서 외교통상분야 정책을 통한 적극적인 지원 노력이 요구된다. 대승적으로는 4차 산업혁명 시대 및 탄소중립 시대를 향한 글로벌 통상 정책 기조에 적극 동참하는 한편, 디지털경제 전환을 뒷받침하기 위해 주요 교역국과의 전자상거래, 데이터의 국경간 이전 등 관련 디지털무역협정 체결을 적극 추진해 나갈 필요가 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논의와 경제안보전략 등 주요 선진국들의 산업통상정책과 발맞추어 나가는 과정에서 실리적이고 포괄적인 산업-통상-외교-안보 전략을 수립할 수 있어야 한다. 최근 출범한 IPEF에 공식적으로 참여하기로 결정한 것은 그 첫걸음으로 이해될 수 있다.

다만, 대통령의 애독서로 더욱 유명해진 밀튼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에서 강조된 것처럼 아무리 선한 의도의 정책도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항상 명심할 필요가 있다. 마찬가지로 이론적으로는 아무리 옳다 할지라도 현실에서는 상황에 따라 예상과는 다른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겸손한 자세로 세부 정책을 설계하고 집행하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 경제를 리부팅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가 필요한 시점이다.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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