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는 아이디어가 현실이 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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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사 ‘N15’의 최창원 팀장이 디지털대장간의 공간을 설명하고 있다.
용산전자상가 ‘디지털대장간’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테크숍은 번쩍이는 아이디어는 있지만 도구가 없어 현실화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다양한 장비를 제공하는 플랫폼이다. 한국판 테크숍이라 불리는 곳이 서울 용산에 있다. 바로 ‘디지털대장간’이다. 디지털대장간은 서울시가 조성한 제작 공간이다. 뜨거운 한여름의 열기 속에 용산역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인 원효전자상가 6동 2층을 방문했다.
작고 오래된 상점가를 미로처럼 지나고서야 ‘서울특별시 디지털대장간’ 현판이 보인다. 기존의 상가와 융합돼 위치하고 있는 점이 색다르게 다가왔다.
내부는 넓고 쾌적하며 개방적이다. 장비의 쓰임새에 따라 공간이 나뉘어 있다. 각 공간을 구분하는 유리벽은 대장간을 찾은 사람들 사이의 경계를 허문다. 혼자가 아닌 함께 만들고 도전하며 즐기는 공간으로 느껴졌다.
“사업화가 가능할지 실제로 만들어봐야 했어요. 그런데 산업용 기계를 만질 수 있는 곳을 찾기가 어렵더라고요. 용산을 거닐다 우연히 디지털대장간을 알게 됐죠. 필요한 장비가 디지털대장간에 전부 있어요.”
강동준(33) ‘동네공작소’ 대표가 요즘 대세라는 아크릴 소재를 이용한 팬 상품(굿즈)을 보여주며 디지털대장간과 인연을 들려줬다. 강 대표는 과거 행사업에 종사했다. 행사 판촉물을 준비하다 팬 상품에 대한 소비자의 수요(니즈)를 파악하고 사업 아이디어가 반짝 떠올랐다.
“디지털대장간에서 6개월가량 아이디어를 실험해봤어요. 그리고 답이 보였습니다.”
▶강동준 ‘동네공작소’ 대표가 자신이 만든 팬 상품(굿즈)을 보여주고 있다.
▶디지털대장간에 마련된 각종 공구
3D프린터 등 57종 100여 대 장비 갖춰
사업에 확신을 가진 강동준 대표는 2018년 아크릴 팬 상품 제작업체 동네공작소를 인근 노량진에 창업했다. 2022년 창업 5년 차인 강 대표는 코로나19로 다소 주춤했으나 연평균 4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강 대표의 아이디어는 디지털대장간을 만나 현실이 됐다.
“필요한 장비를 무료로 다 썼어요. 인쇄기 잉크값만 조금 냈죠.”
디지털대장간에서는 강 대표처럼 전문 장비를 활용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만들어볼 수 있다.
디지털대장간은 57종 100여 대 장비를 갖추고 있다. 산업용 3D프린터부터 레이저 커팅기, 각종 용접기에 이르기까지 고가의 장비가 곳곳에 배치돼 있다. 엄청난 가격으로 인해 구입하기 어려운 장비들이지만 디지털대장간에서는 재료비만 부담하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창업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것으로 꼽는 시제품 제작을 마음 편히 도전하게 하는 곳이다.
“이렇게 다양한 장비를 갖춘 곳은 많지 않아요. 사용 전에 교육도 해줘요. 시제품을 만들 때 여러 장비를 쓸 수 있다는 건 큰 장점입니다.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고 적성을 확인할 수 있죠.”
강 대표가 디지털대장간을 좋아하는 이유다. 독립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지금도 강 대표는 종종 디지털대장간을 찾는다.
디지털대장간이 문을 연 건 2016년. 나진상가 15동 지하에서 출발했다. 2년 뒤인 2018년 지금의 원효전자상가 2층으로 확장 이전을 했다. 디지털대장간은 매주 월∼토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까지 모두에게 열려 있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목공 방으로 들어갔다. 멘토가 지켜보는 가운데 익숙하게 장비를 사용하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이렇듯 디지털대장간에서는 시제품 제작 과정에서 기초 장비 교육은 물론 제작 전반에 대한 다양한 교육도 지원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2016년 문을 열고 2021년까지 1만 8459명이 장비를 이용했고 4만 6132명이 시설을 방문했다”고 소개했다.
전문가에게 상담도 받을 수 있는 디지털대장간은 창업과 사업의 꿈을 키워주는 산실 역할도 한다.
“디지털대장간과 협업하면서 좀 더 발전적이고 구체화된 사업의 형태를 갖춰가고 있어요.”
우리나라 대장장이의 제조 철학이 담긴 ‘자이너’의 조혁빈(26) 대표의 말이다.
2018년 창업한 자이너는 대장장이와 협업해 인테리어 소품, 칼 등 각종 생활 디자인 제품을 만들고 있다.
사업 확장을 꾀하고 있는 자이너에 디지털대장간은 든든한 조력자다. 시제품을 만들고 적합한 양산 공장 연계 지원을 앞둔 자이너는 5월 디지털대장간에서 실시한 ‘스타트업 공장 매칭 프로그램’에 선정됐다.
조 대표는 “자유롭게 물건을 만들 수 있는 현대식 대장간을 찾았는데 바로 이곳이었다”며 멀리 경기 수원에서 찾아오는 이유를 밝혔다. 이어 “디지털대장간에서는 다른 기업과 친해지는 기회도 마련된다”며 “제품 만드는 것 외에 자료를 공유하는 곳”이란 장점도 덧붙였다.
▶신동혁 ‘메타맵’ 대표가 자외선 매트릭스 살균기 ‘유브렐라’를 소개하고 있다.
▶조혁빈 ‘자이너’ 대표가 생활 디자인 제품을 보여주고 있다.
창업과 사업의 꿈 키워주는 산실
원효전자상가와 마주 보고 있는 나진상가 11동에 입주해 있는 신생기업 대표를 디지털대장간에서 만났다. 우산 모양의 자외선 매트릭스 살균기 ‘유브렐라’ 출시를 코앞에 두고 있는 ‘메타맵’의 신동혁(38) 대표다.
신 대표는 “10명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을 월 40만~50만 원에 쓰고 있다”며 “책상 하나보다 조금 큰 방을 월 60만 원 줬던” 이전 사무실과 비교했다.
2019년 창업한 메타맵은 파동 기술로 가전제품을 만든다. 메타맵은 ‘한국의 다이슨’을 꿈꾸고 있다.
디지털대장간에서는 창업 지원까지 4단계로 세분화된 교육을 제공한다. 운영사 ‘N15’의 최창원 팀장은 “제품 기획부터 모델링(모형화), 마케팅, 양산까지 단계별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침 3층 강의실에선 ‘제조 전문가 양산 교육’을 진행하고 있었다. 멘토는 교육생이 작업한 가구 설계 자료를 보면서 양산 시 문제점을 냉철하게 짚어냈다.
최 팀장은 “8월부터 2층과 3층이 통합 운영된다”는 소식을 전했다.
용산 디지털대장간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혁신을 추구하고 있었다. 아무 자본도 없이 자신의 제품을 만들기도 하고 새로운 정보기술(IT) 서비스를 만들어보겠다는 열정으로 신생기업을 운영하기도 한다. 생각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디지털대장간에서 꿈이 자라나고 있다.
글 심은하 기자, 사진 곽윤섭 기자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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