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회담이 남긴 성과와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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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열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 |
윤석열 대한민국 대통령과 조셉 R.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여러모로 이례적이었다. 한국 대통령 취임 이래 불과 열흘 만에 개최되었고 첨단 반도체 공장에서 첫 만남이 이루어졌으며, 북한의 미사일 실험이 이어지고 핵실험이 임박한 상황에서 거행되었다.
사실 대선 기간 중 외교 분야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인수위원회에서도 정책 검토 사안들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으며, 회담 준비 기간도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이번 만남에 대한 일부 우려도 존재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잘 조율된 이번 회담은 이례적인 만남 만큼이나 이례적인 내용을 생산하여 한미정상공동성명에 담아냈다. 향후 5년 신정부의 외교정책 정향과 방향이 대체로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첫째, 한국의 대미외교에서 경제외교의 우선순위가 격상되었다. 한미동맹이 본래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른 군사적 연합을 의미하는 것이었다면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동맹’의 대상은 경제, 기술 분야로 확대되었다. 명실상부한 포괄적 복합동맹의 단계로 격상된 것이다.
첫 만남이 평택 반도체 공장이라는 점은 핵심 기술 관련 대미 파트너쉽을 증진하여 먹고 사는 문제에 외교적 역량을 경주하겠다는 의지라 읽힌다. 반도체와 배터리 등 한국의 핵심 산업부문은 미국의 첨단 기술 혁신 역량과 결합될 때 최고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양국 간 투자 촉진과 연구개발협력 선언은 시의적절했다.
한미 공급망 협력도 경제안보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어졌다. 한국은 대외개방형 경제체제로 국경을 넘는 경제적 상호의존 네트워크 속에서 번영을 이루었다.
문제는 글로벌 공급망이 교란될 때 겪는 막대한 비용이다. 코로나19 확산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 재난으로 공급망의 혼란을 겪었고, 중국의 사드 보복, 일본의 반도체 보복 등과 같이 주변국의 경제 강압에 공급망 안전을 위협받았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미국과 협력체제를 갖추어 간다면 이와 같은 공급망 생태계에 대한 도전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과거 한미정상회담이 북한에 대한 동맹의 억제 태세를 강화하는 동시에 비핵화를 향한 대화와 관여의 공동대응을 강조하였다면, 윤석열-바이든 회담은 핵 태세에 대한 미국의 공약을 확인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북한이 한국과 미 본토에 대한 핵 공격 능력을 증강하고 있고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듯이 핵 사용 위협이 현실화되고 있으며, 중국의 핵전력이 급속히 증대되어 미국에 대한 핵 보복능력을 갖추게 됨으로써 머지않아 핵 경쟁 국면에 진입하는 상황을 맞고 있다.
따라서 핵 방어를 제공하는 한미 간 ‘확장억제’ 공약은 시급한 과제가 되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미국은 공약을 재확인하였으며, 고위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를 재가동하고 미군의 전략자산을 시의적절하고 조율된 방식으로 전개하는 데 대한 공약 등을 확인하였다. 향후 억제력의 업그레이드에 대한 전반적인 공감대와 구체화된 통합억제 전략을 마련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셋째, 윤석열-바이든 회담은 일본을 포함한 한미일 3자 협력을 강조한 점에서 이전 정상회담과 차별성을 갖는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주목한 사안은 한일관계 회복이다. 미국은 두 핵심 동맹국 간 갈등이 전략적 경쟁자 중국을 견제하는 데 장애물이라는 인식을 강하게 갖고 있다.
한일관계 회복을 향한 미국의 의지는 한국에서 “공동의 경제적 도전에 대해 한미일 3국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일본에서는 “한국의 신정권 발족을 환영하고, 안보 관계를 포함한 한미일간 긴밀한 관계와 협력의 결정적인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한일관계 개선에 적극적인 윤석열 정부는 일본과의 미래지향적 협력과 역사문제를 둘러싼 갈등 완화 노력을 신중하게 병행 추진해야 하는 난제를 풀어야 한다.
끝으로, 대미외교에서 커다란 과제는 미국이 추진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을 둘러싼 한미간 공동비전을 마련하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워싱턴에서 미-아세안 10개국 정상회의로 시작하여 서울에서 한미정상회담, 도쿄에서 미일정상회담과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출범 그리고 쿼드(Quad) 정상회담으로 대미를 장식하였다. 인도-태평양 전략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는 구체적인 행보이다. 따라서 미국은 윤석열 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한 기본입장과 철학, 대중 정책 구상을 듣고자 한다.
한국은 미국 인태 전략의 주요 축인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에 참여하면서 개방성, 투명성, 포용성의 원칙을 강조하여 중국을 품고 공생하는 길을 찾고자 한다. 미일정상회담에서 선언한 “힘에 의한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 반대,” “경제 강압 등 규칙 기반 국제질서에 반하는 중국의 계속적 행동” 등 중국 관련 언급을 피한 이유 그리고 신장 위구르, 홍콩 문제 등 중국이 내정간섭이라 주장하는 이슈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이유도 중국의 견제보다는 관여를 선호하는 신정부의 입장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 신장 등 보편가치 외교와 관련한 신정부의 입장은 이미 알려져 있다. 반면, 미국은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핵심 기술 개발 및 공급망 협력을 추진하고자 한다. “민주주의 원칙과 보편적 가치에 맞게 기술을 개발, 사용, 발전시킬 것을 약속”한다는 선언이 이번 공동성명에 포함되어 있다. 중국과의 협력에 일정한 제한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신정부는 실용적 이익 추구과 보편적 가치 추구 사이 적절한 균형을 이루는 고난도 과제를 안고 있다.
신정부는 미중 양국이 설계하는 제도들에 각각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협력하여 공통 가치와 이익의 분면을 넓히면서도 미중 경쟁이란 이분법적 틀에 갇히지 않고 한국의 핵심이익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는 규칙과 규범을 제정하는 전략을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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