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겪어봐야 알게 되는 것들 그림이 마음에 들어올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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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상황을 겪어봐야 이해되는 그림이 있다. 나이가 들어야 비로소 알게 되는 그림이 있고, 병고를 겪거나 사회에서 밀려나고 고립된 후에야 공감하는 그림이 있다. 그래서 동양화는 감상보다는 그림 속에 담긴 뜻과 의미, 상징과 은유를 읽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 말은 곧 동양화가 외적인 아름다움에 치중하기보다는 의미전달을 더 중요시했다는 뜻이다. 동양화를 볼 때 그 안에 담긴 배경지식을 충분히 갖추고 있지 않으면 자칫 오독(誤讀)할 수 있는 위험성도 다분하다. 사전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은 그만큼 일반인들이 동양화에 다가가기 힘들다는 한계로 작용할 수도 있다.
탄은(灘隱) 이정(李霆, 1554~1626)이 그린 ‘수노인도(壽老人圖)’는 읽는 그림으로서의 동양화라는 개념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서양화를 감상하는 시선으로 ‘수노인도’를 본다면 이해할 수 없는 장르에 속한다. 그림에는 머리가 비정상적으로 위로 솟구친 노인이 손에 복숭아를 들고 서 있다. 머리에 고깔모자를 쓴 것은 아닐까 싶어서 자세히 들여다봐도 그냥 머리다. 허리에는 호리병을 차고 있다. 머리 뒤에는 박쥐 다섯 마리가 날아다닌다. 좌측 상단에는 ‘수복쌍전(壽福雙全)’이라고 적혀 있다. ‘수와 복 두 가지가 온전하다’는 뜻이니 누군가의 장수(長壽)와 복을 축원하는 용도로 제작된 그림임을 알 수 있다.
‘수노인’은 ‘목숨을 관장하는 노인’이란 뜻이다. ‘수노인도’는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별인 수성(壽星) 혹은 남극성(南極星)을 인격화한 그림으로 수성노인도, 노인성도, 남극노인도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부른다. 남극성은 천구의 남극에 존재하는 항성인데 중국에서는 남극성이 추분에 나타났다 춘분에 사라지면 나라가 태평하고 번성한다고 믿었다. 그 믿음이 지속되면서 남극노인도 혹은 수노인도는 장수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세조의 영정을 모신 신당 벽면에도 ‘수성노인도’가 그려져 있다. 이 그림에는 수노인이 두 명 등장한다. 복을 주는 신선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않을까?
‘수노인도’는 수노인의 등장만으로 모자라 손에 복숭아까지 들고 있다. 복숭아 역시 장수의 대명사다. 복숭아는 중국 도교 신화에 나오는 여신의 우두머리 서왕모의 정원에서 자라는 과일이다. 그 복숭아는 3000년 만에 한 번씩 꽃이 피고 3000년 만에 다시 열매를 맺는다고 한다. 동방삭은 서왕모의 정원에 열린 복숭아를 훔쳐 먹고 삼천갑자를 살았다고 전해진다. 갑자(60년)가 3000번 되풀이될 동안 살았으니 최소한 18만 년은 살았다고 할 수 있다. 그 정도 세월이면 복숭아를 수도(壽桃)라고 부른 이유를 수긍할 만하다. 수노인이 복숭아를 들고 두 손을 앞으로 내민 모습이 마치 그림을 받은 사람에게 수명을 선물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박쥐는 왜 들어갔을까? 박쥐를 뜻하는 복(?)과 복을 뜻하는 복(福)은 동음이의어다. ‘수복쌍전’의 ‘온전할 전(全)’도 ‘돈 전(錢)’과 동음이의어다. 그러니 박쥐가 복숭아 가지와 옛날 돈(엽전)을 입에 물고 있는 그림은 무조건 돈과 복을 기원하는 그림이라고 보면 된다. 따라서 ‘수노인도’는 장수와 복을 온전히 누리라는 최상의 축원이라고 하겠다. 여기서 더 욕심을 부린 그림으로는 복록수삼성을 그린 ‘삼성도(三星圖)’가 있다. 삼성도는 복을 담당하는 복성(福星), 출세를 담당하는 녹성(祿星), 장수를 담당하는 수성을 의인화해 함께 그린 그림이다.
평소에는 그다지 눈길조차 주지 않던 ‘수노인도’를 갑자기 보게 된 이유는 최근에 가까운 사람이 유명을 달리했기 때문이다. 나보다 한참 어린 사람을 먼저 떠나보낸 후 허전한 마음을 달랠 수가 없다. ‘수노인도’ 그림을 보여주며 장수를 기원해줬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가 드는 요즘이다.

조정육 미술평론가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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