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고 싶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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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좋아하는 사람, 닮고 싶은 사람이 있다. 학창 시절 수필가 피천득의 글을 읽고 또 읽었다. 시에 버금갈 만큼 명료한 문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고 감동적인 글, 그처럼 글을 쓰고 싶었다. 그의 책 ‘인연’은 전 구절을 암송할 수 있을 정도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기자가 됐을 때는 일본의 유명 저널리스트인 다치바나 다카시처럼 되고 싶었다. 그는 저서인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 ‘임사체험’, ‘우주로부터의 귀환’, ‘사색기행’ 등에서 왜 우리가 끝까지 배움을 멈추지 않아야 하는가를 질문했다. 저렇게 똑똑한 사람도 죽기 전까지 책을 놓지 않았는데 나는 뭔가 싶었다. 나는 여전히 게으르지만 그래도 이 질문을 생각하면 잠깐 동안은 부지런히 살 수 있었다.
언론사를 그만두고 비행기 조종사가 되기 위해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오니 모든 것이 낯설었다. 가장 많이 방황했던 시기다. 비행훈련을 끝내고 정식 조종사가 되기 전까지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사람은 아내였다. 현명한 아내 덕분에 무언가를 할 때 나 혼자만 생각하지 않고 공동체를 생각하게 됐다.
중동 에어라인에서 정식 부기장이 된 후로는 비행에서 만나는 모든 기장이 나의 롤모델이 됐다. 사는 곳도 성격도 인종도 다르지만 한 분야에 짧게는 10년부터 길게는 30년 가까이 종사한 장인들과 한솥밥을 먹으며 비행할 수 있다는 것은 지금도 큰 기쁨이다. 내 실수들을 고쳐주고 적극적으로 조언해주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겸손해졌다.
요즘에는 아이들이 내가 닮고 싶어 하는 사람이 됐다. 쌍둥이 아빠가 된 지 갓 100일이 넘었다. 인내력과 끈기, 그리고 고진감래(苦盡甘來)의 미덕을 기르는 데 육아만한 것이 없다고 키득거리는 나는 아직 형편없는 아빠지만 아이들의 꾸밈없는 웃음을 보면 살아온 날들을 반성하게 된다. 그래서 맹자도 “대인이란 어린아이의 마음을 잃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했나 보다.
며칠 전 피천득의 책을 다시 책장에서 꺼내 읽기 시작했다. 수십 년 전 학창 시절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그가 이 책을 쓸 때와 비슷한 나이가 돼서인가 싶다. 여전히 수필 ‘인연’ 속에 나오는 만남과 이별은 아련하지만 이제는 당시에 지나쳤던 다른 구절이 다가온다.
‘새해에는 거울을 들여다볼 때나 사람을 바라다볼 때 늘 웃는 낯을 하겠다…. 인생은 작은 인연들로 아름답다.’
이 세상에는 참으로 배우고 싶은 사람, 닮고 싶은 사람이 많다. 앞으로도 수많은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다.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배울 점이 있고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나도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배우고 싶고 닮고 싶은 사람이 되면 좋겠지만 당장 욕심부리지는 않겠다. 지금은 작은 인연들에게 웃는 낯을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원요환
프로N잡러 중동 파일럿. 국내 경제지 기자 출신으로 지금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민항기 조종사로 일하고 있다. 이외에도 작가, 리포터, 콘텐츠PD 등으로 활동 중이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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