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계 성평등 문화 정착을 위한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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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새미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연구위원 |
여성, 스포츠 그리고 불평등: 왜 우리는 체육계 성평등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가?
2022년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Economist)는 경제협력개발기구(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OECD) 국가의 여성 유리천장지수(Glass-Ceiling Index)를 발표했다. 발표결과에 따르면 한국은 100점 만점에 20점대로 평가되었으며 이는 성별, 임금 격차, 이사회 임원 비율, 국회의원 비율 등에서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여성에 대한 ‘유리천장’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공고하게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대학지성, 2022.03.09.). 단편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격차를 가늠해볼 수 있는 한국 여성의 유리천장지수는 2013년부터 경제협력개발기구 29개 국가 중 10년 연속 거의 최하위라는 불명예를 기록하였으며, 그중에서도 2022년 남녀의 임금 격차는 31.5%로 매우 심각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모습을 다양하게 반영하고 있는 ‘스포츠’라는 영역에서 남녀 간의 격차, 즉 성차별은 어떻게 나타나고 있을까? 지난 세계여성의 날에 개최되었던 토크 콘서트에서 발표된 ‘국내 스포츠단체의 임원 비율’을 통해 우리는 체육계 내에 만연하는 성차별의 모습을 단편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대한체육회, 서울시체육회 등 주요 스포츠단체의 여성임원 비율은 2021년 기준 10%에 불과하며(한국체육학회, 2021), 스포츠선수의 경우에는 여성이 남성보다 연봉을 평균 400만 원 적게, 지도자의 경우에는 여성이 남성보다 평균 500만 원 정도 적은 연봉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2020).
위에 언급한 것처럼 체육계 및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성불평등은 구조화된 형태로 존재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즉, 성불평등은 사회가 발전하면서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노력에 의해서 개선되는 구조적 문제이다. 따라서 우리는 성불평등과 성차별에 대한 이슈를 발굴하고 실태를 진단함으로써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노력이 바탕되어야만 스포츠분야, 나아가서 우리 사회는 성평등 사회에 한걸음 더욱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체육계 성평등과 현장 여성체육인들의 어려움
체육계에서 나타나는 성불평등은 하나의 규범적 요소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닌 조직구조, 시스템, 문화, 인식에 걸쳐 폭넓게 나타나는 광범위한 문제이다. 다음의 사례는 체육계에 자리 잡고 있는 성불평등 인식을 단편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최근 북아일랜드 여자축구 감독은 잉글랜드와의 여자 월드컵 유럽 예선전에서 0대 5로 패전 뒤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그 이유는 팀이 전반전에 선제 실점하고 이후 후반전에서도 연이어 4골을 내주자, 감독이 기자회견에서 패배의 원인을 말하는 과정에서 실언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여자축구 경기를 보면 실점한 팀이 짧은 시간 내에 추가 실점하곤 한다. 여자축구 경기가 다 그렇다. 왜냐하면, 소녀와 여자들은 남자보다 더 감정적이기 때문이다.”라는 발언으로 성차별적인 인식을 드러냈고(연합뉴스, 2022.04.14.), 이는 일부 체육계 종사자들이 가지고 있는 그릇된 성평등 인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
국내의 다른 사례에서도 그릇된 성평등 인식을 살펴볼 수 있다. 지난 2019년 한 여성감독은 남자 유소년축구팀 감독 공개채용에 응하여 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여성감독으로서 남자축구팀을 이끄는 데 어려움은 없는가?”라는 질문에 “처음에 든 생각은 ‘학부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였다.”라고 말했다. 아무래도 남자 유소년축구팀에 여성감독이 오는 경우가 자주 없다 보니 본인도 학부모들의 반응이 궁금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후 학부모들에게 여성감독 부임에 대한 소감을 물었을 때,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여성감독이요?”라며 되물었다고 한다(대한축구협회, 2019.05.17.). 즉, 학부모들이 유소년축구팀의 감독, 특히 남자 유소년축구팀의 감독은 남성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반대로 여자 유소년축구팀 감독이 남성이었다면 학부모들의 첫 반응이 남성감독에 대한 놀라움이었을까?
또 다른 사례를 보면, 한 여성지도자가 남자 고등학생선수들로 구성되어 있는 학교운동부에 공채를 통해 채용된 경우가 있었다. 그러자 학부모들은 채용된 여성지도자에 대해 집단 보이콧을 하겠다고 주장했다. 자녀의 대학진학 문제가 걸려있는 학교운동부에 정보 네트워크가 활발하지 않은 여성지도자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학부모들의 집단 보이콧은 여성지도자가 남성지도자보다 정보 네트워크가 부족하다는 고정관념에서 시작된 것으로 판단되며 이러한 상황은 비단 학교운동부지도자에게만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특히 체육계 현장에서 여성체육인들은 임신, 출산, 육아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한 중학교운동부의 여성지도자가 출산 후 육아휴직을 사용한 사례가 있다. 학교 측은 해당 기간 동안 학교운동부와 스포츠클럽 담당지도자의 부재를 채우기 위해 단기 강사를 고용하였고, 여성지도자는 육아휴직 후 복직하였다. 여기까지는 문제라고 할 것이 없었지만 또 다시 갈등이 발생했다. 그 여성지도자가 1년 뒤 다시 임신을 한 것이었다. 임신한 여성지도자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는데, 학부모들이 여성지도자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부터 여성지도자에게 은근히 퇴사를 압박했기 때문이다. 학부모들은 중학교 3학년인 자녀가 고등학교에 들어가는 중요한 시기에 담당지도자가 육아휴직을 하게 되는 것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 또한 자신의 자녀가 중학교 1학년일 당시 담당지도자가 육아휴직을 했었던 것처럼 담당지도자가 육아휴직을 하게 되면 담당지도자의 부재를 다시 단기 강사가 메우게 된다는 것도 불만이었다. 이러한 학부모들의 민원이 생기자 학교관리자는 여성지도자에게 에둘러 퇴사를 권유하였고, 끝내 여성지도자는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퇴사하였다.
이와 유사한 결과는 김원정·김선아·정윤미·이성준(2021)의 <2021년 성평등추진전략사업: 지속가능 사회를 위한 성평등 의제 확산>을 통해서도 찾아볼 수 있다. 체육계 성차별 근절 및 여성체육인 권익 증진을 위한 조사·연구의 일환으로 여성체육인의 임신, 출산, 육아 등 체육계 모성보호 실태를 조사한 결과 실업팀과 프로팀에서 선수생활을 하는 여성체육인들은 임신을 미루는 경향이 있으며,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로 인해 소속팀을 떠나거나 아예 선수생활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체육계의 성불평등 문화와 인식 개선을 위한 노력의 필요성
여성가족부에서는 성평등 문화의 정착과 여성의 좋은 일자리 확대를 위해서 ‘여성대표성 제고 및 여성인재 양성’, ‘성평등 정책 추진체계 강화 및 국내외 협력 활성화’, ‘여성의 경력단절 예방 및 당당한 재출발 지원’과 같은 세 가지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추진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공공부문의 여성관리직 확대 및 여성인력 사회진출을 위한 역량 제고에 힘쓰고 있으며, ‘성별영향분석평가’ 운영 강화를 비롯한 사회 전반의 성평등 의식 문화 확산을 위한 사업을 통해 성평등 교육 확대, 성평등 실천사례 확산, 대중매체 성평등 모니터링, 가족친화제도(육아휴직, 유연근무제 등) 기업 및 공공기관 인증제를 운영하고 있다(여성가족부, 2022).
그렇다면, 우리 체육계 내에서는 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해서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는가? 이는 인권교육이나 실태조사, 토론을 통한 정책 제안 차원에서 벗어나 여성체육인들의 피부에 와닿을 수 있는 실질적인 정책 발굴을 위해서 어떠한 시도와 노력을 하였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다. 또한 체육계에서는 여성체육인들이 경험하는 현장 그리고 그들의 삶에서 경험하는 성불평등 이슈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게 관심을 보였는가? 현재 체육계의 성평등 이슈는 남성과 여성이 평등하게 참여하고 일상생활에서 체감할 수 있는 여성체육인 관련 정책을 추진하는 방향이 아닌 인권문제와 직결하는 경향을 보인다. 물론 인권침해의 한 유형으로 고용, 임금, 근로조건에 있어 부당한 차별을 받는 평등권 침해에 대한 논의도 성평등을 위한 노력으로 인식될 수 있지만, 이러한 현상은 여성들로 하여금 성주류화 및 사회 전반의 실질적인 성평등 실현을 위한 기반 마련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기보다 때로는 성평등과 관련한 논제를 흐리는 데 일조하기도 한다. 우리가 성평등과 관련한 제도나 현실을 이해하고 현실변화를 위해 노력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여성의 인권과 인격 그리고 여성의 일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것이 성평등 정책 실현을 위한 기본 전제라고 할 수 있지만 대중들의 인식, 더군다나 남성중심적 사고들이 지배적으로 나타났던 스포츠계의 인식을 급격하게 개선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다. 지금 우리 사회와 체육계가 성평등이 실현되는 세상으로 한 단계 다가서기 위해서는 다양한 정책적 노력이 경주되어야 한다.
스포츠분야에서 성평등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해당 규정이나 행동이 성평등 가치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또는 변화하는 사회의 성평등 문제의식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에 대한 현실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현실 검토를 위해서는 각종 성평등 현안에 대한 대응력을 제고하고, 성평등 추진 정책의 원활한 현장적용을 위한 기초자료를 생산하는 것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작업은 우리가 성불평등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그리고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 및 관련 법제의 정비나 개선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해결의 실마리가 된다.
한편 체육계에 존재하는 성불평등과 관련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체육계 내에서 발생하는 성불평등 이슈에 대해 면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스포츠분야 사례에 대한 성인지적 분석과 성평등 의식의 검토는 체육계 내 성평등에 대한 인식적 수용성을 향상시켜줄 것이다.
나가며
우리 체육계에 뿌리내린 젠더 규범은 지속적으로 재생산되고 성불평등을 재확인시키는 기재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이유로 이에 대해 방관 또는 무관심하거나 젠더 규범 해소를 위한 기초 작업에도 다소 소극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체육계의 성평등 문화 정착을 위해서는 성불평등과 관련한 이슈를 발굴하고 그 실태와 현실을 진단함으로써 성평등 문화 실현을 위한 정책의 기틀을 잡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젠더 거버넌스를 구축함으로써 여성체육인들의 대표성을 확보한다면, 체육계 내의 성평등 인식은 한 단계 성숙해질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현시점에서 모든 체육인이 체감하는 성평등 문화 정착을 위하여 성평등 이슈의 확장 및 정책 행위자의 다각화, 그리고 연령, 계층별로 세분화된 성평등 정책 요구를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실제 현장을 연계하는 것을 목적으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주지한 바와 같이 체육계 성평등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다양한 조직 및 단체와의 협력을 통해 체육계 성평등 문화 구축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토대를 우선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이 발행하는 <스포츠 현안과 진단> 기고문 입니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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