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장 재킷·한지 부츠… “동물과 인간의 아름다운 공존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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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타이거’의 지구를 지키는 옷
“오리털, 울, 모피는 당연히 죽은 동물의 몸에서 얻은 것들로 만든 거라고 생각했죠. 그게 아니라는 사실도 충격이지만 시간이 지나도 크게 달라질 게 없다는 것이 더 절망적이었어요. 평생 캠페인만 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
양윤아 대표는 9년 전 브랜드를 론칭하던 때를 이같이 떠올렸다. 앞서 남성 패션을 전문으로 했던 양 대표는 구제역 파동으로 돼지들이 생매장당하는 모습을 접한 뒤 동물보호단체 활동가로 전향했다. 3년간 그가 맡은 일은 동물학대 사건을 조사하는 것이었다. 패션산업에서 엄청난 동물착취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특히 겨울만 되면 많은 동물이 인간을 위해 산 채로 털과 피부가 벗겨진다는 사실은 큰 충격이었다. 문제의 실마리를 풀기 위해 패션계로 돌아가기로 했다. 동물성 소재를 일절 쓰지 않는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품은 채였다. 2015년 국내 최초의 비건패션 전문 브랜드 ‘비건타이거’는 이렇게 탄생했다.
“우리가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옷일수록 동물학대가 만연해요. 울이 대표적이죠. 양모 농장에서는 청결을 이유로 마취도 없이 양의 항문 주위 살을 도려내는 ‘뮬싱’이 일반화돼 있어요. 무자비하게 털을 채취한 뒤 상품성이 떨어지면 양고기로 팔고요. 패딩에 들어가는 오리털, 거위털 역시 동물이 엄청난 고통을 느끼는 가운데 잔인하게 채취하고 장갑이나 모자에 달려 있는 정체불명의 털도 비윤리적으로 사육된 개, 고양이인 경우가 많아요. 이런 사실을 알고 나니 당장 입을 수 있는 옷이 많지 않더군요. 동물착취를 반대만 할 게 아니라 대체할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직접 브랜드를 만들었죠.”
론칭 후 3년여간은 마니아층만 찾는 브랜드였다. 일각에선 비건패션을 마케팅의 수단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비건의 개념조차 생소하던 때였으니까. 양 대표는 비건페스티벌을 열어 비건이 비단 먹는 문제에만 국한되는 게 아님을 알리는 일부터 했다. 이후 2020년 우리나라 비건패션 브랜드로는 처음으로 미국 뉴욕 패션위크에 초청됐고 같은 해 ‘2020년 대한민국패션대상’에서 대통령상과 인기상을 동시에 받으며 새로운 시장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지난 3월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024 K-패션 나이트’ 무대에도 오르며 비건패션을 넘어 차세대 K-패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했다.
대체소재가 관건… ‘한지 가죽’ 개발도
서울 중구 비건타이거 사무실에서 만난 양 대표는 화려한 프린트가 돋보이는 보라색 원피스에 매끈한 가죽 부츠를 신고 취재진을 맞았다. 원피스는 폐페트병으로, 부츠는 한지 가죽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특히 부츠는 닥나무 원사를 친환경 기법으로 가공해 직접 개발한 한지 가죽 원단으로 제작했다. 양 대표는 자체 소재를 개발하면서 우리나라 고유의 특성이 드러나길 바랐다고 했다.
“멕시코는 선인장 가죽이, 이탈리아는 오렌지 가죽과 와인 가죽이 유명해요. 필리핀에서는 코코넛 원단으로도 옷을 만드는데 우리나라는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 한지를 떠올렸죠. 동물가죽이나 인조가죽보다 훨씬 가볍고 통기성이 좋다는 게 장점이에요.”
이밖에도 비건타이거의 제품은 리넨, 텐셀, 모달, 폐그물로 만든 나일론 등 100% 비동물성 소재로 만든다. 브랜드를 론칭한 뒤 처음 내놓은 제품은 ‘실크 프리 로브(가운)’였다. 실크를 추출하는 과정에서도 살아 있는 누에를 끓는 물에 담가 고치를 얻는 등 폭력이 가해진다. 단 1g의 실크를 만드는 데 15마리의 누에가 희생된다. 비건타이거는 펄프로 만든 레이온으로 실크의 촉감을 구현했다. 또한 비동물성 소재일지라도 생산과정에서 환경에 부담을 많이 주는 소재는 최대한 친환경적인 생산방식을 통해 제작한다. 일례로 데님의 경우 화학공정을 거치지 않고 재배한 유기농 목화를 원료로 한 것만 사용하며 돌에서 추출한 천연염료로 염색한 것을 쓴다. 전 세계 살충제 사용량의 24%가 면화 재배에 사용되면서 심각한 토양오염을 야기하고 청바지 한 벌을 만드는 데 4인 가족이 5~6일을 사용할 수 있는 물(7000~1만 1000리터)이 쓰인다는 것이 양 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매번 비동물성 소재면서 친환경적이기까지 한 원단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브랜드 론칭 초기에는 원단에 울이 섞인 것을 뒤늦게 발견해 제품 제작 발표를 취소하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원단공장 측의 설명만 믿고 제품 생산 준비를 모두 마친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하지만 양 대표는 “디자이너가 노력하면 충분히 대체 가능한 소재를 찾을 수 있다”면서 “패션산업의 동물착취를 종식하는 것을 목표로 지속가능한 소재를 계속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비건은 안 예쁘다? 화려함으로 편견 뒤집어
옷의 소재는 라벨을 유심히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정확히 알기 어렵다. 당장 소비자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디자인이다. 비건타이거의 옷은 유독 화려한 패턴과 과감한 색감으로 유명하다. 로제, 선미, 현아 등 K-팝 스타들이 이곳의 옷을 즐겨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양 대표는 “비건은 예쁘지 않다, 비건은 엄숙하다는 편견을 깨고 싶었다”고 했다. 자신의 별명인 ‘채식하는 호랑이(비건타이거)’를 브랜드 이름으로 삼은 것도 기존의 비건 이미지를 비트는 의상을 선보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화려한 의상에는 브랜드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숨어 있다. 비건타이거는 매년 동물을 주제로 콘셉트를 정하고 이를 패턴 등으로 표현해낸다. 코끼리, 호랑이, 고래 등이 프린트된 의상을 통해 관광산업으로 착취당하는 동물의 실태를 알리는 ‘본투비 와일드’ 시리즈는 여름마다 진행한다. 2020년에는 모피 생산을 위해 희생된 동물들을 기억하자는 의미로 유령 이미지가 프린트된 의상들(‘모피농장의 유령들’)을 선보였고 2023년에는 동물의 털 없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인조퍼 패션을 제시하기도 했다(‘노퍼레이드’). 2024년에는 환경오염으로 파괴된 지구가 소생하길 바라는 마음을 ‘리와일딩(Re:wildING)’이라는 주제에 담아 풀어갈 예정이다. 하지만 양 대표는 ‘가치’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찾는 옷을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아무리 좋은 가치를 지녔더라도 사용하지 않을 물건을 만드는 것은 환경적으로도 옳지 않다는 얘기다.
“물질이 넘쳐나는 시대에 뭔가를 또 만들어내면서 윤리적이다, 친환경적이다 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모순일 수 있어요. 하지만 예쁜 옷을 입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완전히 억제하는 건 가능하지도 옳지도 않죠. 그러니 더욱 옷을 만드는 데 있어 가치만 강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옷을 생산하기로 했다면 사람들이 반드시 입을 만한 것을 만들어야죠. 제가 해야 할 일은 소비자들이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시장의 기조를 바꾸는 일이에요. 지금 패션산업의 가장 큰 문제는 저품질의 값싼 옷을 너무 많이 만들어내는 데 있어요. 그러니 오래 입을 수 있는 예쁘고 품질 좋은 옷을 만드는 게 중요해요. 어느 시점에 가면 동물착취나 환경적 요소를 고려하지 않는 생산자가 리스크를 안게 될 거예요.”
“지구 지키기? 지금 할 수 있는 일부터”
양 대표는 패션계에 다양한 가치가 확산하기 위해서는 정부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비건타이거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속가능패션 제작지원’과 해외 쇼룸 운영을 지원하는 ‘더셀렉츠’ 등의 도움을 받아 성장해왔다. 특히 2023 지속가능패션 제작지원 대상자로 선정된 덕에 1년간 다양한 소재개발에 집중할 수 있었다. 원단은 한 번 살 때 대량으로 구매해야 하기 때문에 작은 사업체에는 부담일 수밖에 없는데 비건타이거는 정부 지원 덕에 다양한 대체소재를 시험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양 대표는 “패션계에는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고려한 브랜드를 비롯해 플라스틱프리, 업사이클 전문, 로컬베이스 등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는 기업이 많다”면서 “좀 더 많은 지원이 있어야 지속가능한 패션 시장이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 대표는 소비자들을 향해선 “비건패션은 어렵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그가 말하는 비건패션은 ‘많은 것을 희생하지 않고도 동물과 지구를 보호할 수 있는 습관’이다. 스스로도 모든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애쓰기보다 현재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려고 한다.
“비건생활을 한다고 하면 모든 영역에서 굉장히 철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쉽게 접근하면 좋겠어요. 단 하루만 동물의 희생 없는 생활을 하더라도 아무 일도 안 하는 것보단 나아요. 저희도 마찬가지예요. 별 생각 없이 옷을 집어들었다가 이런 브랜드도 있구나 하고 자연스럽게 비건패션에 대해 알게 하는 게 1차 목표예요. 한편에선 인조퍼 등 일부 제품에 대해 그것도 어차피 플라스틱이 아니냐며 따지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환경적 영향도 끼치지 않으려면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당장은 동물착취를 안하는 게 먼저예요.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는 게 오랫동안 브랜드 가치를 지켜내는 길이라고 믿어요.”
조윤 기자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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