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흘리는 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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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듣기 싫은 소리가 제발 결혼 좀 하라는 엄마의 잔소리라면 그다음으로 듣기 싫은 소리는 요가 선생님의 구령 “차투랑가, 차투랑가 단다”이다. 쉽게 말해 “엎드려뻗쳐, 팔 굽혀 내려가”라는 얘기다. 명령에 가까운 구령을 차마 거역할 수 없기에 있는 힘껏 팔을 굽혀 보지만 내 팔꿈치는 고장이라도 난 듯 160도에서 멈춰버린다. “더 내려가세요. 더, 더, 더!” 선생님은 이런 나의 등을 지그시 누르며 자세를 교정해주려 한다. 그러나 그 압력조차 버거운 나는 초당 400회의 속도로 날갯짓을 하는 모기처럼 바들바들 팔을 떨다가 이내 땅바닥에 푹 퍼질러지는 망신을 당하고야 만다.
차투랑가의 치읓만 들어도 치가 떨리다 보니 요가원에 가고 싶은 마음이 시나브로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요 몇 달 사이, 여러 가지 일로 마음이 괴로워 강도 높은 수련에 제 발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차라리 몸이 괴로운 편이 낫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엎드려뻗쳐, 팔 굽혀 내려가”를 기본으로 “엎드려뻗친 채 한쪽 다리 가슴 향해 굽혀”, “다리 하나 들고 팔 굽혀 내려가”와 같은 변형 동작들이 매섭게 이어졌고 겨드랑이에서는 이구아수폭포처럼 땀이 콸콸 흘러내렸다. 수련 뒤에는 무시무시한 근육통이 어김없이 뒤따라왔다. 어떤 날은 통증을 이기지 못해 앓아눕기도 했다. 그렇게 몇 차례의 몸살이 지나갔다. 그리고 이젠 “차투랑가, 차투랑가 단다” 구령에 맞춰 엎드려뻗치고 팔을 굽힌다. 아주 가뿐하게 말이다.
안되던 동작이 되기 시작하니 요가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해병대 조교 같은 선생님의 구령이 기다려지기까지 했다. 물론 개중에 제일 좋아하는 동작은 수련 마지막에 하는 ‘사바사나’다. 쉽게 말해 드러누워 쉬라는 얘기다. 얼마 전 폭풍 같은 수련을 마치고 가만히 누워 가쁜 숨을 고르는데 복잡했던 머릿속이 차분히 정리되면서 또르르 눈물이 흘렀다. 온몸은 근육으로 이뤄져 있으니 마음에도 당연히 근육이 있겠구나. 그동안 내 마음이 괴로웠던 이유는 온 마음을 다해 살아온 결과가 근육통으로 나타났던 것이구나. 그러니까 이 가슴앓이가 끝나고 나면 나는 더욱 강한 내가 될 수 있겠구나. 그렇구나.
“손가락 발가락 꼼지락꼼지락. 잠들어 있던 몸을 깨워 봅니다.” 선생님의 말대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눈물로 얼룩진 내 얼굴을 본 옆자리 도반이 괜찮냐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는 수건으로 얼굴을 훑으며 명랑하게 대꾸했다. “아니, 오늘따라 땀이 너무 많이 나 가지고. 벌써 여름 같지 않아요?” 그녀의 귀에는 이런 나의 대답이 눈물을 땀으로 위장하려는 드라마 속 터프가이의 대사처럼 들렸던 모양인지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으면서도 괜찮냐고 재차 물어왔다. 아유, 이거 진짜 땀이라니까요. 좌로 구르고 우로 구르고 앞으로 취침했다가 뒤로 취침하는 극기 훈련을 이제 막 마친, 내 마음이 흘리는 땀!
이주윤
글을 쓰고 그림도 그린다. 어쩌다 보니 맞춤법을 주제로 한 책을 여러 권 출간했다. 국어사전 속에서 온종일 헤매는 일이 싫지 않은 걸 보면 아무래도 체질인 듯싶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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