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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멍? 물멍? ‘돌멍’ 하는 선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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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인들이 돌을 반려동물처럼 돌본다는 뉴스를 봤다. 개·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이나 제라늄·선인장 같은 반려식물을 키우는 데 부담을 느낀 사람들에게 무생물인 반려돌이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불멍(불이 타오르는 모습을 멍하게 보는 것)’, ‘물멍(물이 흐르는 모습을 멍하게 보는 것)’에 이어 조만간 ‘돌멍(돌을 멍하게 보는 것)’까지 대세가 될 전망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불이나 물을 보면서 멍 때리고 앉아 있고 싶은 욕구는 그만큼 사람들이 많이 지쳐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돌은 불이나 물과 달리 촉감이 추가된다. 작지만 손에 확실히 잡을 수 있는 주머니 속의 돌을 만지작거리면서 하루를 마감하고 위안을 얻는 사람들이 많다. 그까짓 돌이 뭐라고 위안이 될까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사람들이 돌을 사랑한 역사는 의외로 오래됐다.

경화세족들의 정원에 빠질 수 없는 것
이인문의 ‘연정수업’은 연꽃이 있는 정원을 그린 작품이다. 화첩인 탓에 그림 가운데 세로로 접힌 부분이 보인다. 정원 중앙에는 연꽃이 핀 연못이 있고 연못 안에 누각을 세웠는데 누각 안에서 스승과 제자가 앉아 한참 수업 중이다. 누각 뒤의 오른쪽 그늘에서는 시동이 차를 끓이느라 연신 부채질이다. 찻물 보글거리는 소리가 그림 너머 우리 귀에까지 들린다. 연못은 제법 규모가 큰지 작은 돛단배도 보이고 한 시동은 앉아서 낚싯대를 드리웠다.
이 그림은 실제 풍경을 그린 산수화가 아니다. 담장 중앙의 대문과 오른쪽 하단의 소나무 아래에 사슴이 있다. 사슴은 장수와 영생을 상징해 십장생(十長生)에 포함되는 동물이다. 연꽃은 부처를 상징하는 청정한 꽃임과 동시에 군자의 꽃으로도 사랑받았다. 사슴, 연꽃 등은 이곳이 실제 풍경이 아니라 이상적인 공간임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연정수업’은 실제로 누릴 수는 없지만 이런 곳에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속의 이상향을 그린 작품이다.
그렇다고 해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실현 가능한 정원이다. 18세기 이후 한양에서 높은 벼슬을 한 경화세족들은 정원에 연못을 만들고 뱃놀이를 하며 차를 마시는 것을 즐겼다. 양반문화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괴석(怪石)이다. 괴석은 말 그대로 괴상하게 생긴 돌을 뜻한다. ‘연정수업’에도 정자 양쪽에 괴석이 서 있는데 연못 속에 설치해 마치 물속에서 자란 것처럼 보인다. 괴석은 대자연의 축소판으로 정원을 꾸미는 데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요소였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괴석을 좋아하게 됐을까? 괴석은 태고의 역사성과 불변성을 내포하고 있다. 오랫동안 자연의 일부분으로 존재하면서 의연하게 본래의 모습을 지킨다. 그래서 돌은 장수를 기원하는 십장생에 포함됐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조금만 삐끗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안면 몰수하는 사람들에 시달리다 항상 그 자리에서 변치 않는 모습으로 서 있는 돌을 보면 뭉클해지는 법이다.

창덕궁 낙선재 뒤뜰에 ‘괴석’이 있는 이유
그중에서도 ‘연정수업’에 등장하는 태호석(太湖石·석회암이 녹아 기형적 형태가 된 돌덩이)은 조경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손에 넣고 싶어 하는 ‘워너비(wannabe·가지고 싶은 물건)’였다. 태호석을 중국에서 수입해 정원에 장식해놓고 친구들을 불러 함께 감상하면서 시를 짓거나 괴석도를 그리는 취미가 일세를 풍미했다. 창덕궁 낙선재 뒤뜰에 장식된 괴석 역시 왕실과 귀족들 가문에서 괴석을 즐겼던 풍조를 반영한다.
요즘 사람들이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는 작은 돌은 조선 후기 경화세족들의 정원에 장식한 괴석하고는 그 의미가 다를 것이다. 그러나 돌을 감상하거나 소유하고 싶은 마음은 동일하다. 변치 않는 항상심일 것이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도 단단한 돌멩이처럼 흔들리지 않고 삶을 살아내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조정육 미술평론가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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