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정복자 티투스 황제의 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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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는 평생 20여개의 오페라를 작곡했다. 그의 오페라들은 어린 시절의 소규모 작품부터 성숙기의 완성도 높은 오페라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극’으로 구성돼 있다. 그중 ‘모차르트의 3대 오페라’라고 하면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마술피리>를 손꼽는다.
그런가 하면 그의 마지막 오페라는 <티토의 자비(La Clemenza di Tito)>다. 이 오페라는 그가 1791년 <마술피리>을 작곡하던 중 그해 보헤미아 왕위에 오른 레오폴트 2세의 대관식을 위해 작곡한 것이다. 모차르트는 죽기 3달 전인 1791년 9월 6일 이 오페라를 보헤미아의 수도 프라하 국립극장에서 초연했다. ‘보헤미아’는 오늘날의 체코를 말한다.
그러면 ‘티토’는 누구인가? 다름 아닌 로마제국의 티투스 황제(39~81AD)다. 즉 라틴 명칭 Titus의 이탈리아식 표기가 Tito인 것이다.
로마에는 티투스 황제에게 바쳐진 개선문이 콜로세움 근처 지대가 다소 높은 곳에 세워져 있다. 이 개선문의 윗부분에는 ‘원로원과 로마 시민들이 신격 베스파시아누스의 아들 신격 티투스에게 바친다’라는 라틴어 문구가 뚜렷하다. 티투스가 신격화됐다는 것은 이 개선문이 그가 죽은 후에 세워졌다는 뜻이다.
개선문 안쪽 벽에는 베스파시아누스와 티투스가 예루살렘을 정벌하고 로마에 개선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표현돼 있는데 그 안에는 어떤 역사적 배경이 있을까?
때는 네로황제가 통치하던 서기 66년, 로마제국의 속주 유데아(유대)에서 걷잡을 수 없는 반란이 일어나자 네로 황제는 노장 베스파시아누스를 급파했다. 베스파시아누스와 그의 장남 티투스가 지휘하는 로마군은 반란군의 저항선을 뚫고 예루살렘을 포위했다.
마침 그때 수도 로마에서 정변이 일어나 네로 황제가 스스로 생을 끝냈다. 이어서 쿠데타의 연속으로 1년 동안 황제가 세 명이나 바뀌는 등 로마의 정세는 극도의 혼란에 빠졌다. 이에 오리엔트 군단은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을 황제로 옹립하여 사태를 평정했고, 베스파시아누스는 로마에 입성해 황제 자리에 올랐다.
아버지로부터 예루살렘 공략을 위임받은 장남 티투스는 공격을 개시했다. 예루살렘 성은 넉달 동안 계속된 포위를 견디지 못하고 끝내 함락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유대인들의 정신적 구심점 예루살렘 성전은 철저하게 파괴되고 말았다. 예루살렘 성 안은 무자비한 살육으로 아비규환을 이뤘으며, 목숨 붙은 자들은 노예로 끌려갔다. 서기 71년, 베스파시아누스와 티투스가 개선마차를 타고 로마에 입성했다. 그 뒤에는 예루살렘에서 가져온 수많은 전리품과 포로 행렬이 줄을 이었다.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는 로마제국의 굳건함을 만방에 보여주려는 듯 웅대한 원형 경기장을 72년 착공했는데, 이것이 바로 콜로세움이다. 하지만 그는 콜로세움의 완공을 보지 못하고 79년 타계했고 80년 그의 아들 티투스 황제가 콜로세움 개막행사를 성대하게 열었다. 그런데 티투스는 재위 2년 만에 41살의 나이로 절명하고 말았다.
티투스 개선문 안쪽 벽면에는 개선 장면이 묘사돼 있다. 왼쪽 벽의 개선 행렬을 보면 전리품으로 챙긴 은나팔, 금으로 만든 제대(祭臺), 일곱 개의 가지로 된 금촛대 등 예루살렘 신전의 보물들이 눈에 선명하게 띈다.
오른쪽 벽면에는 개선 마차에 올라탄 티투스에게 승리의 여신 빅토리아가 면류관을 씌우는 모습이 보이며, 로마를 상징하는 여신이 말을 끌고 있고 뒤에는 로마의 원로원과 시민들이 환호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면 티투스는 어떤 황제였을까? 그는 원래 성격이 포악하고 행실이 좋지 않았으나 황제가 된 다음부터는 로마제국의 최고통치자로서 자신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불식시키고, 온순하고 자비스러운 모습으로 의욕적으로 제국을 통치했다.
그런데 그가 재위하던 동안 로마에는 큰 재앙이 많았다. 79년 8월 24일 황제가 된 지 불과 두 달 만에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폼페이가 매몰되었는가 하면 80년 초에는 로마에 대화재가 발생해 막대한 피해를 보았고, 81년 여름에는 유례없는 전염병이 나돌아 수많은 사람이 희생됐다.
티투스는 재앙이 있을 때마다 대책위원회를 발족시켜 현장에 나서서 진두지휘했으며 복구와 구호사업에 사재를 털어 넣기도 했다. 또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사람을 몸소 팔에 안고 위로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해 9월 13일 전염병이 수그러질 때쯤 그는 온천으로 요양하러 가는 도중에 그만 쓰러졌다. 로마제국의 모든 시민은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 물론 유대인들은 그가 천벌을 받았다고 생각했겠지만.
한편 모차르트의 오페라 <티투스의 자비>를 보면 티투스 황제가 자기를 암살하려던 측근을 콜로세움에 던져 맹수들의 밥이 되도록 하지 않고 사면해 주자 백성들은 그를 크게 칭송한다.
즉, 이 오페라는 티투스가 정치적 음모와 배신에도 불구하고 로마의 정의와 화합을 추구한 자비롭고 관대한 황제였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물론 이 오페라에서 다뤄진 사랑의 삼각관계와 황제 암살 시도 등은 역사적 사실과는 무관한 창작된 이야기일 뿐이다.
◆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건축 분야 외에도 음악·미술·언어·역사 등 여러 분야에 박식하고, 유럽과 국내를 오가며 강연과 저술 활동도 하고 있다.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동유럽 문화도시 기행>, <이탈리아 도시기행>,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 <매력과 마력의 도시 로마 산책> 외에도 여러 저서를 펴냈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culturebox@naver.com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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