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이름으로 그린 멸종위기생물 500종 “기록하면 기억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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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생태원 홍보대사 ‘숨탄것들’ 진관우 작가
반달가슴곰, 시베리아호랑이, 고라니…. 멀리서 보면 그저 익숙한 동물의 그림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자못 특별하다. 동물의 온몸이 글자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그 글자는 다름 아닌 동물의 이름이다. 시베리아호랑이의 몸엔 ‘시베리아호랑이’ 일곱 글자가, 반달가슴곰의 몸엔 ‘반달가슴곰’ 다섯 글자가 반복적으로 쓰여 있다. 눈동자나 줄무늬, 수염, 발톱 등 미세한 표현조차 한글의 자모로 표현했다. 가령 호랑이의 눈동자는 ‘ㅇ’으로, 털의 무늬는 ‘ㅣ’로 그리는 식이다. 지금까지 이렇게 그려진 그림이 약 500점. 모두 지구상의 멸종위기생물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붉은머리독수리, 유령안경원숭이, 새앙토끼 등 처음 들어보는 동물도 많다.
한글로 그린 특별한 동물 그림들은 진관우 작가의 작품이다. 진 작가는 멸종위기종을 그리는 프로젝트 ‘숨탄것들’의 대표를 맡고 있다. ‘숨탄것’은 ‘숨을 쉬고 살아가는 모든 동물’을 일컫는 우리말이다. 지구상의 숨탄것들이 점차 사라져가는 것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에 2019년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기록하면 기억된다’는 것이 그의 철학. 국립생태원 홍보대사이기도 한 진 작가는 멸종위기생물을 이름으로 그려냄으로써 그 존재가 잊히지 않도록 하는 데 힘쓰고 있다. 바닷속 생태계를 연구하고 자연의 소리를 녹음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을 탐구하는 일까지 ‘숨탄것들’에는 13명의 팀원이 함께한다. 진 작가는 “기록하면 사라지는 것들의 순간을 영원히 기억할 수 있다”고 입술에 힘을 주며 말했다.
수달이 생태계 망친다? 그가 펜 잡은 이유
그는 현재 대학에서 바이오환경과학을 전공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동식물에 관심이 많았지만 특별히 멸종위기생물을 공부한 것은 아니다. 그런 그가 본격적으로 사라져가는 생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동물원에서 특별한 경험을 하고 난 뒤다.
“군 입대를 앞두고 동물원에 갔는데 사람들이 비버를 보면서 완전히 틀린 얘기를 하는 거예요. ‘저게 수달인데 해외에서 들어와 우리 생태계를 망치고 있다’고요. 외래종인 비버를 보고 수달이라고 한 것도 놀랍지만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인 수달을 생태계 교란종인 뉴트리아와 혼동하는 걸 보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이전까지는 그저 동물을 좋아하기만 했다면 그 순간에 제가 해야 할 일이 뭔지 확실히 깨달았죠.”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그는 이때부터 멸종위기생물을 캔버스에 담아 누리소통망(SNS)에 올리기 시작했다. 그림을 배워본 적조차 없다는 그는 태블릿PC로 작업을 한다. 한 작품을 그리는 데 빠르면 서너 시간, 길면 3주 이상 걸린다. 멸종위기생물에 대한 정보는 국내외 신문기사와 동식물백과, 학술논문 등을 참고한다. 그럼에도 정보는 늘 부족하다. 그는 그림을 그릴 때 가장 힘든 것이 참고자료를 찾는 일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동물만 그리다 점차 서식지를 배경으로 그려 넣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지금은 그림과 함께 생물에 관한 정보도 올려요. 가령 큰홍띠점박이푸른부전나비는 주로 우리나라 묘지공원에 사는데 주변이 콘크리트화되면서 2022년에 멸종위기생물 2급에서 1급이 됐어요. 이런 내용을 알아야 우리가 왜 사라져가는 생물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설명이 되잖아요. 일단 저부터 공부를 해야 하는데 늘 자료가 부족해요. 그럴 땐 관련 기관에 직접 찾아가거나 메일을 보내 정보를 얻기도 하죠. 지금까지 모은 정보를 토대로 지난해 ‘지구의 숨결’ 1편을 출간했어요. 2, 3편으로 계속 이어갈 계획입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내 작품도 그래”
진 작가가 처음부터 한글로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니다. 시작은 반달가슴곰이었다. 곰의 귀를 그리는데 그 모습이 ‘비읍(ㅂ)’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부터 그림을 동물의 이름으로 가득 채운 것이 지금의 작품 세계로 이어졌다. 특히 한글은 그림을 그리는 데도 유용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영어를 쓰면 알파벳이 직선으로 쭉 이어질 뿐이지만 한글은 자음과 모음을 조합하면 네모, 동그라미, 세모 등 면을 형성해 모양을 잡기에 편하고 보기에도 예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의 그림은 그 생물의 이름을 기억하게 하는 데 탁월하다. 누구나 그의 작품 앞에선 그림 속 글자를 보기 위해 캔버스에 가까이 다가가게 되고 생물의 이름을 천천히 되뇌게 되기 때문이다. ‘ㄷㅜㄹㅜㅁㅣ? 아~ 두루미!’ ‘기록하면 기억된다’는 그의 철학은 한글과 만나 더욱 빛을 발한다.
“나태주 시인이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고 했잖아요. 제 그림이 그런 것 같아요. 대체 그림에 뭐라고 쓴 건가 자세히 보게 되고 그러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어요. 결국 자세히 보고 오래 봄으로써 그림 속 숨탄것들을 기억하게 돼요. 더불어 한글의 아름다움도 느끼게 되고요.”
진 작가는 2023년 7월 영국 런던의 ‘브릭레인 갤러리 아넥스’에서 열린 전시에 참가해서는 한글을 더욱 강조한 작품을 선보였다. 전시장 벽면을 한글 자음을 이름의 초성으로 가진 14종의 동물 그림으로 꽉 채운 것이다. ㄱ-강치, ㄴ-눈송이갯민숭이, ㄷ-대서양알락돌고래 등 특정 글자가 반복적으로 새겨진 작품은 한글을 모르는 외국인이 봐도 그 의도를 파악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는 “영국 관람객들도 작품을 무척 신기해했다”면서 “갤러리 관장이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예술을 한다는 것이 아름답다’고 말해줘 감동받았다”며 웃었다.
기후위기가 ‘독도는 우리 땅’ 가사도 바꿔
전 세계 멸종위기동식물은 200만 여종에 이른다. 그들이 사라져가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대표적 원인 중 하나는 기후변화다. 그 예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북극곰이다. 하지만 우리가 북극곰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은 얼마나 될까? 진 작가 역시 이러한 의문을 품고 지난해 여름 북극에도 직접 다녀왔다. 그는 그곳에 가서야 알게 된 사실이 많다고 했다.
“빙하가 녹으면 왜 북극곰이 살기 어려워질까요? 빙하가 녹으니 바다표범이 살기 어려워지고 바다표범을 먹고 사는 북극곰도 위기에 처한 거예요. 게다가 얼음이 녹으면 갈색의 땅이 드러나요. 그러면 흰털을 가진 북극곰은 몸을 숨기기 어려워 사냥에 실패하는 일이 늘어나죠. 그곳에서 가정집에 전기펜스를 쳐놓은 걸 보고 이유를 물어보니 몇 주 전 굶주린 북극곰이 민가에 내려와 사람을 죽였다고 하더군요. 또 따듯한 기후에 사는 그리즐리베어의 서식지가 넓어지면서 북극곰과 교배해 그롤라베어 같은 ‘북극 혼종’이 생겨나기도 해요. 이 같은 현상이 심화되면 북극곰 원종은 점점 더 보기 힘들어지는 거예요.”
진 작가는 ‘북극의 경고’가 비단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꼬집는다. 지구온난화로 우리나라에서는 국산 바나나 재배가 가능해졌고 가을엔 초록색 낙엽이 가을풍경을 장식하기도 했다. 기후변화는 ‘독도는 우리 땅’의 가사마저 바꿔놓았다. ‘평균기온 12도 강수량은 1300’은 ‘평균기온 13도 강수량은 1800’으로, ‘대구 명태 거북이’는 ‘대구 홍합 따개비’로 불리게 된 것이다. 뜨거워진 지구에서 투아타라(옛 도마뱀목)는 수컷만을, 바다거북은 암컷만을 번식하는 기이한 일도 벌어진다. 진 작가는 “2016년에 포유류 중 최초로 브렘블케이멜로미스가 기후위기로 멸종한 것이 과학적으로 밝혀졌다”면서 “지구의 위기는 동식물의 위기로, 나아가 인간의 위기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거대한 생존의 위협 앞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진 작가는 모두가 불편함을 감수해야 공존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극단적으로 소비를 줄이는 일이다.
“지구온난화로 불가사리, 돌돔 같은 천적들이 사라지면서 성게가 번성한 탓에 바다사막화가 심화되고 있어요. 이 때문에 해양생물들이 사라지면 해산물 가격이 오르는 등 우리 식탁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죠. 에코백 들고 분리배출 열심히 하는 정도만으로는 지금의 위기를 막기 어려워요. 생활 전반에 있어 소비를 크게 줄여야 해요. 물건을 생산하면서 발생하는 탄소의 양이 엄청나거든요. 불편함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때라야 지구가 평온해진다는 사실을 기억해주세요. 나와 이 생태계, 지구는 모두 연결돼 있습니다.”
조윤 기자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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