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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수출 면발 길이 지구 2539바퀴 세계 입맛 사로잡은 K-라면의 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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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라면이 전성기를 맞았다. K-컬처의 인기에 힘입어 해외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라면은 이제 일본 라멘의 인기를 뛰어넘어 인스턴트 면 시장을 선도하는 주역으로 성장했다. K-라면에 빠진 외국인 관광객이 우리나라에 오면 달려가는 곳이 있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있는 CU홍대상상점이다. 이곳은 2023년 12월 라면 특화편의점, 일명 ‘라면 라이브러리’라는 콘셉트로 문을 열었다. 이름에 걸맞게 매장 한 면은 라면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230여 종의 라면이 책처럼 꽂혀 있는 모습이 누리소통망(SNS)으로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한국 관광 필수코스가 됐다.
라면은 매운맛 5단계로 나눠 진열돼 있고 라면을 끓여 먹을 수 있는 즉석라면 조리대도 비치돼 있다. 거대한 컵라면 모양의 시식대는 포토존으로도 인기다. 이곳에서 외국인들이 라면을 끓여 먹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봄 소식이 더딘 3월 12일, 라면 라이브러리는 외국인 관광객으로 북적였다.
폴란드에서 온 토마시(55) 씨는 “딸과 함께 여행을 왔다가 라면으로 유명한 곳이라서 와봤다”며 “즉석라면 조리대를 처음 사용해봐서 어려웠지만 직접 라면을 끓여 먹을 수 있어 재미있다”고 전했다. 그가 선택한 라면은 삼양식품의 ‘까르보나라 불닭볶음면’. 액상수프를 넣기 전 미리 매운 수프를 맛본 토마시 씨는 “너무 맵다”며 계속 물을 들이켰다.
홍콩에서 온 리청주(43) 씨는 “한국의 매운 라면을 좋아한다”며 “오늘 먹은 ‘신라면’이 맛있어서 3개를 더 샀다”고 말했다. 편의점 관계자는 “라면 라이브러리가 생긴 이래 방문객의 70%는 외국인 관광객”이라며 “외국인 관광객은 3단계 맵기의 라면을 주로 먹는다”고 밝혔다.



2023년 라면 수출 사상 최대
관세청이 2월 29일 발표한 ‘라면 수출 현황’에 따르면 2023년 라면 수출액은 9억 5200만 달러로 최대 수출기록을 경신했다. 이는 2022년 대비 24.4% 증가한 수치다. 규모로는 24만 4000톤으로 2019년 수출 규모인 13만 7000톤에 비해 약 두 배 증가했다. 이는 120g 봉지라면 20억 개에 육박하며 면발 길이로는 약 1억㎞(지구 2539바퀴)에 달한다. 2024년 들어 상승세는 더 빨라졌다. 1월 라면 수출액은 8600만 달러를 기록해 1월 최대 기준을 넘어섰다.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2024년 라면 수출액 10억 달러 달성 및 10년 연속 수출기록 경신을 기대할 수 있다.
라면을 수입한 나라도 132개국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라면 수출 상위 3개국은 ▲중국(22.6%) ▲미국(13.3%) ▲네덜란드(6.4%)다. 특히 라면 수출국 중 네덜란드의 수출 규모가 늘어난 것이 눈에 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8.7배가량 늘며 북미를 넘어 아시아에 버금가는 시장으로 급부상했다. 네덜란드는 유럽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어 유럽시장의 규모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결과에 힘입어 우리나라 3대 라면 회사인 농심, 삼양식품, 오뚜기의 영업이익도 크게 증가했다. 업계에 따르면 농심의 2023년 영업이익은 2120억 6474만 원으로 전년 대비 89.1% 늘었다. 농심의 대표상품인 ‘신라면’은 2023년 해외 매출 7100억 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14% 증가했다.
삼양식품은 ‘불닭볶음면’의 선전에 힘입어 2023년 영업이익 1468억 2347만 원을 기록, 전년 대비 62.46% 늘었다. 삼양식품은 2023년 3분기 해외 매출이 처음으로 2000억 원을 돌파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오뚜기 역시 영업이익 2548억 9384만 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37.3% 성장했다. 오뚜기의 경우 전체 매출 중 해외 매출 비중은 10%로 농심과 삼양식품에 비해 낮지만 해외 수출액은 꾸준히 늘고 있다.



K-라면 시대 이끈 ‘짜파구리’
K-라면은 K-컬처의 대표상품으로 해외에 각인되기 시작했다. 2020년 2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수상한 영화 ‘기생충’에서 배우 조여정이 ‘짜파구리(짜파게티+너구리)’를 먹는 모습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짜파구리’를 경험해보려는 이들이 늘어났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짜파구리’가 전 세계인들에게 한국 라면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며 “이로 인해 한국 식품이 주목받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K-팝 스타들의 영향도 크다. 유튜브 콘텐츠나 예능프로그램 등에서도 ‘라면 먹방(먹는 방송)’ 콘텐츠가 쏟아졌다. 방탄소년단(BTS)의 정국을 비롯해 여러 스타가 자신만의 레시피를 개발해 팬들에게 소개하기도 했다. 정국이 만든 ‘불구리(불닭볶음면+너구리)’와 ‘라죽(라면죽) 레시피’는 전 세계 팬들에게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그 외에도 샤이니 멤버 키의 ‘토마토 라면’, 라면 레시피의 원조 격인 마크정식(오뚜기 스파게티, 자이언트 떡볶이, 소시지, 스트링치즈, 모차렐라치즈 등을 넣어 만든 라볶이) 등도 해외 팬들에게 주목받았다.
누리소통망에서 특정 행동이나 미션을 수행하는 영상을 촬영해 공유하는 ‘챌린지 문화’도 라면의 인기에 한몫했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놀이문화로 ‘불닭 챌린지’, ‘매운 라면 챌린지’ 등 한국의 매운 라면을 먹는 경험을 챌린지를 통해 공유하는 것이 유행하면서 라면의 수요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현지화 전략으로 세계의 입맛을 사로잡다
K-라면 인기의 시작은 콘텐츠와 유행에서 비롯됐지만 다양한 장점으로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라면 수출액이 본격적으로 급증하기 시작한 것은 코로나19 팬데믹부터다.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셧다운(봉쇄)되면서 저장이 쉽고 간편한 식품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다. 이때 영화 ‘기생충’에서 시작된 ‘짜파구리’는 격리음식이라 불리며 인기몰이를 했다. 또한 저렴한 가격으로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업계의 철저한 현지화 전략도 해외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요인이다. 라면 제조회사들은 국가별 음식문화에 맞는 레시피를 개발해 선보이고 있다. 최근 한 유튜버가 세계 각지에서 판매되는 ‘신라면’을 비교분석한 영상이 화제가 됐다. 한국, 뉴질랜드, 일본, 중국에서 판매하는 ‘신라면’의 내용물과 맛을 비교한 이 유튜버는 일본 제품이 건더기가 더 풍부해서 맛있다고 평했다. 원조 차별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현지화 전략을 엿볼 수 있는 사례다. 라면 제조 기업들은 현지 소비자의 선호에 맞춰 건더기 양을 조절하고 현지 규정에 맞춰 첨가물을 조절하고 있다.
현지인의 입맛에 맞는 제품 개발도 꾸준히 진행 중이다. 농심의 경우 최근 인도시장을 겨냥해 ‘신라면 스파이시 치킨’을 출시했다. 닭고기를 즐기는 인도 소비자의 수요를 반영한 결과다. 태국에서는 2023년 11월 태국의 대표 수프요리인 ?얌의 맛을 접목한 ‘신라면 ?얌’을 출시했다.
삼양식품은 ‘불닭볶음면’의 해외 매출이 전체 매출의 80%를 차지하는 만큼 현지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 미국의 아시아와 히스패닉 소비자를 겨냥해 ‘?얌불닭볶음탕면’과 ‘하바네로라임불닭볶음면’을 출시하고 매운맛이 익숙하지 않은 현지인들을 위해 ‘콘불닭볶음면’을 내놓기도 했다. 해외 전용 건면 브랜드인 ‘탱글’도 출시해 미국과 캐나다 시장에 선보이고 있다. 올해 1월부터는 중동 소비자의 입맛을 만족시키기 위해 ‘마살라불닭볶음면’을 출시했다.
라면 제조기업들이 전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만큼 당분간 K-라면의 인기는 뜨거울 전망이다. 삼양식품과 농심은 소비자의 수요를 빠르게 충족하기 위해 공장을 증설할 계획이다.
삼양식품은 경남 밀양시에 미주 수출 전초기지가 될 공장을 건립한다. 삼양식품의 밀양2공장이 완공될 경우 연간 5억 6000만 개의 라면이 추가로 생산된다. 농심은 미국 제2공장의 생산라인을 증설해 미국 텍사스·캘리포니아와 멕시코 등의 시장점유율을 높일 계획이다.

정부, K-푸드 플러스 전략으로 수출 독려
정부는 라면을 비롯한 농식품과 전후방산업을 수출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2월 20일 ‘K-푸드 플러스 수출혁신전략’을 발표하고 ‘K-푸드 플러스 수출확대 추진본부’를 조직하기로 했다. 이 본부는 K-푸드뿐 아니라 스마트팜·농기자재·동물용 의약품·펫푸드 등 전후방산업을 수출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한 민·관 협의체로 주무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본부장을 맡는다. 본부는 앞으로 주요 수출 현장의 애로사항을 해소하고 수출·투자를 독려해 2027년까지 K-푸드 플러스 수출 목표액인 135억 달러를 달성할 계획이다.

글·사진 조이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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