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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값진 세 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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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혔다. “찍는다! 아플 테니까 이 꽉 물어!” 언질이라도 슬쩍 줬다면 마음의 준비를 했을 텐데 무정한 도끼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나의 발등을 급습했다. 하기야 찍는다고 미리 알려줄 정도의 배려심을 지닌 도끼였다면 애초에 찍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테지. 처음에는 예상치 못한 찍힘에 어안이 벙벙했다가 이내 현실을 자각하고는 ‘세상에 믿을 도끼 하나 없다지만 너마저 그럴 줄이야!’ 꺼이꺼이 목 놓아 울다가, 슬픔이 잦아들자 험한 말이 줄줄 흘러나왔다. 폭풍 같은 감정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덩그러니 남은 건, 그동안 이 도끼가 금도끼인 줄 알고 애지중지했던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이었다.


세상의 모든 슬픔을 한 줄로 세운다고 가정했을 때 나의 슬픔은 뒤에서 대여섯 번째 정도밖에는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 손톱 밑 가시가 가장 아픈 법이다. 그대로 방치했다가는 곪아 터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름대로 이성적인 사고를 거친 끝에 찾아간 곳은 다름 아닌 점집이었다. 안다. 나도 내가 비이성적이라는 사실을. 나는 그저 미래가 궁금하다는 핑계를 앞세워 “사실은 있잖아요” 하며 한풀이를 할 요량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슬픔이 반으로 줄어들지는 않았다. 이십 분이 흐르자 그녀가 “흠흠!” 헛기침을 하며 내 이야기를 저지했기 때문이다. 5만 원어치 한풀이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자본주의의 차가움에 뼛속이 다 시렸다.


점집을 나선 나는 친구와의 약속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음 같아서는 머리를 빡빡 밀고 산속으로 직행하고 싶었으나 고작해야 1년에 서너 번 만나는 친구와의 약속을 취소할 수는 없었다. 나는 그 귀한 시간 동안 기쁘고 행복한 이야기만 나누려 애를 썼다. 하지만 재채기와 사랑과 썩은 표정은 숨길 수 없다고 그 누가 말했던가. 한껏 문드러진 내 얼굴을 본 친구가 자꾸만 옆구리를 찔러댔고 나는 그만 모든 사실을 털어놓고야 말았다. “그런 일이 있으면 전화를 하지 왜 혼자서 끙끙 앓고 그래? 하여튼 너는 참!” 친구는 내 이야기를 실컷 들어준 걸로도 모자라 헤어질 적에도 “잘 가” “들어가” “다음에 봐” 하는 말 대신 “전화해” 하며 손을 흔들었다.


“알았어. 전화할게!” 나는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지금보다 더욱 커다란 슬픔이 나를 덮친대도 그녀에게 전화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건 통장에 돈이 있지만 함부로 쓰지 않는 마음과도 같다. 통장 잔고를 바라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든든하듯 언제든 전화할 수 있는 친구가 내 곁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전화해. 세상에서 가장 값진 세 글자가 자꾸만 귓가에 맴돌아 몰래 조용히 웃었다. 그 흔한 말 한마디에 뭉클한 내가 지나치게 감성적인 것 같기도 하지만, 고민 상담 이십 분에 5만 원이 시세인 세상에 이보다 더 값진 말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이주윤
글을 쓰고 그림도 그린다. 어쩌다 보니 맞춤법을 주제로 한 책을 여러 권 출간했다. 국어사전 속에서 온종일 헤매는 일이 싫지 않은 걸 보면 아무래도 체질인 듯싶다.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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