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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위에 둥둥… 이게 학교? 공간이 바뀌니 상상력도 성적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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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우수교육시설 대상 ‘용남고’에 가다
레고 블록을 쌓아놓은 듯 기하학적 형태의 건물들을 얇은 원통형 기둥들이 버티고 있다. 수변 공간 위에 자리한 탓에 멀리서 보면 마치 물 위에 건물이 ‘공중부양’한 것 같다. 여기에 전체적으로 밝은 톤의 건물 외벽과 내부를 훤히 드러낸 통유리창은 개방감을 더한다. 네모반듯한 학교의 틀을 완전히 깼다. 올해로 개교 56년을 맞은 경남 사천시 용남고등학교의 모습이다.
용남고는 2019년 교육부의 학교공간혁신사업 공모에 선정된 뒤 2023년 5월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새로 지어졌다. 당시 학교의 건축철학은 이랬다. ‘공간의 제한은 행동의 제한을 가져오고 동시에 사고의 제한을 가져온다.’ 모든 교실이 땅에 붙어 있지 않아 ‘떠 있는 학교’로 불리게 된 용남고는 수십 년간 같은 모습을 유지해온 학교의 틀을 벗어나기 위한 철학적 고민의 결과로 탄생했다. 자유로운 학교 공간이 학생들의 생각을 자극하고 확장시키길 바랐다. 그 결과 용남고는 2023년 12월 ‘2023년 대한민국 우수교육시설 공모전’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교육부는 학교 공간을 창의적으로 조성한 우수교육시설을 발굴·확산하기 위해 1998년부터 공모전을 매년 실시하고 있다. 2023년에는 최근 2년 내 신축이나 개축, 증축, 리모델링을 진행한 교육시설 26곳을 대상으로 했다.
용남고의 떠 있는 학교 콘셉트가 처음부터 완벽하게 의도된 건 아니다. 학교가 언덕에 자리한 탓에 여느 학교처럼 네모반듯한 모양으로 설계할 수 없었던 점도 영향을 미쳤다.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설계가 ‘혁신’으로 이어졌다는 게 김동형 교무부장의 설명이다.
“학교가 언덕에 자리한 데다 부지(총면적 5542㎡)도 크지 않아 완전히 네모반듯한 모양으로는 설계하기가 어려웠어요. 특히 아래층과 위층의 단차가 심해 이걸 극복하는 게 큰 과제였죠. 그래서 생각해낸 게 위층으로 갈수록 건물을 계단 형식으로 밀어 쌓는 형태로 만든 겁니다. 단차를 극복하면서 테라스가 생겨 면적도 넓어지는 장점이 있죠. 이 같은 설계로 건물 아래쪽은 떠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됐고요. 덕분에 수변 공간도 조성할 수 있었어요. 비오는 날, 쉬는 시간에 ‘물멍’하기 좋죠. 설계는 힘들었지만 장점이 많은 구조예요.”



고교학점제 대비 ‘가변형 교실’로 설계
학교 안 모습은 더욱 예측하기 어렵다. 3개 학년 총 17학급의 모든 교실이 서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 학교에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길을 잃기 십상이다. 모든 교실은 크기도 모양도, 책상과 의자의 색깔도 다르다. 무엇보다 각각이 하나의 모듈 형태로 된 교실은 계단으로 서로 연결돼 3차원적인 공간 이동이 가능하다. 긴 복도를 중심으로 교실이 빽빽하게 일렬 배치된 기존 학교와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획일적인 공간이 획일적인 교육을 만든다’는 교사들의 생각이 변화무쌍한 모습을 만들어냈다. 정작 변화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한 것은 학생들이었다. 처음엔 곳곳에서 불만이 터져나왔다. ‘왜 우리 교실이 더 작나’, ‘저쪽 교실은 테라스도 있는데…’.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불평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용남고는 이동수업이 많아 학생들이 여러 교실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목 특성에 따라 교실도 다양해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동수업은 ‘가변형 교실’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가변형 교실은 움직이는 가벽과 접이식 문을 조정해 교실을 크게도 작게도 만드는 게 가능하다. 때문에 과목, 수업방식, 수강인원에 따라 교실을 자유자재로 변형해 쓸 수 있다.
특히 학교 측은 설계 당시부터 ‘고교학점제’를 염두에 두고 가변형 교실을 구상했다. 2025년부터 전국 모든 학교에 도입되는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따라 스스로 과목을 선택하고 이수학점을 채우면 졸업을 인정하는 제도다. 가장 큰 특징은 개인 맞춤형 학습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고교학점제 아래서는 모든 학생의 시간표가 다르다. 교과 선택의 자율성을 담보하기 위해선 다양한 과목이 개설돼야 하고 이는 자연스레 다양한 교실의 모습을 필요로 한다. 가변형 교실은 이 같은 미래 교육 변화에 대해 용남고가 내놓은 ‘해법’이다. 용남고 교사들은 “학교 공간 혁신의 궁극적 목적은 외관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혁신하는 데 있다”고 입을 모은다. 최연진 교장이 학교를 새로 지으면서 “수업도 함께 바꿔나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이유다.
고교학점제하에서는 과정 중심의 평가가 강화된다. 즉 정해진 하나의 답을 맞히는 것이 아니라 토론과 프로젝트 등을 통해 자신만의 논리를 갖춘 답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에 고교학점제 선도학교인 용남고에서는 여러 과목을 합친 융합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하나의 주제를 다양한 학문적 바탕에서 고민해볼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우리 학교는 4년째 학기마다 2~4개 과목이 함께하는 융합수업을 하고 있어요. 2023년 2학기에는 ‘지진’을 주제로 수학과 물리, 사회 과목 선생님들이 함께 수업을 진행했죠. 원의 방정식을 활용해 진원을 찾고 지진의 파동을 물리적으로 분석하고 지리정보시스템(GIS)으로 지진에 대비하는 방법을 모색해보는 식이에요. 마지막 수업에는 모든 과목 선생님이 모인 자리에서 학생들이 결론을 도출해 발표합니다. 여건상 융합수업을 진행하기 어려운 학교가 많은데 우리는 가변형 교실 덕에 넓은 공간에서 프로젝트 수업이 가능하죠.” 김 교무부장의 설명이다.



학생들 ‘최애’ 공간은 도서관
용남고에는 이밖에도 ▲교실 위 공중정원 ▲과학클러스터 교실 ▲카페테리아형 교사 휴게실 ▲지역주민과 공유하는 소규모 공연장 등 여느 학교에서 찾아보기 힘든 공간들이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많은 학생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으로 꼽는 것은 ‘도서관’이다. 테라스나 운동장이 아닌 도서관이 학생들의 ‘최애’ 공간이 된 이유는 뭘까?
지하 1층부터 지상 2층까지 3개 층이 하나로 연결되는 도서관은 학교 건물의 구심점이다. 특히 떠 있는 교실과 땅 사이에 있는 지하 1층 도서관은 책장을 양쪽 벽으로 밀어붙인 대신 가운데 공간을 널찍한 계단으로만 채워 엄청난 개방감을 준다. 이곳에서 학생들은 책을 읽거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수변 공간을 바라보며 사색하기도 좋다. 숨죽이며 책만 봐야 하는 도서관이 아니라는 얘기다. 1, 2층 역시 책들 사이로 휴식·토론 공간, 개방형 열람실과 바 형태의 책상 등이 마련돼 있어 공간을 원하는 대로 활용할 수 있다. 2학년 조재구 학생은 “요즘은 스터디카페를 선호하는 친구가 많은데 우리 학교는 도서관이 워낙 예쁘고 책도 많아 학생들이 여기서 공부하는 걸 좋아한다. 조별활동도 도서관에서 하면 뭔가 더 자유로운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학생 자율 강화, 성적 포기 아니야”
곳곳에 휴게 공간이 많은 것 또한 이 학교의 특징이다. 애초에 ‘쉼’이 많은 학교를 지향한 덕이다. 소파에 앉아 수변 공간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쉼터, 교실 문을 열면 곧장 야외로 연결되는 테라스, 몸을 뉘일 수 있도록 곳곳에 설치된 빈백(bean bag·쿠션이 있는 편안한 의자)은 학교의 지향점을 가장 잘 드러내는 부분이기도 하다. ‘공부만을 위한 공간으로서의 학교를 짓지 않는다’, 설계 전 용남고의 학생과 학부모, 교사가 공통으로 바랐던 점이다. 그런데 외부인의 시선으로 보니 걱정이 앞선다. 대입을 앞둔 고등학생들이 이렇게 자유로워도 되는 걸까? 하지만 자율성을 강조한 결과는 우려와 달리 성적 향상으로 이어졌다는 게 김 교무부장의 설명이다.
“예전에는 모든 학생이 교실 한곳에 모여 공부할 수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공간이 다양하니 학생들이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곳을 찾아 활용해요. 홀로 독립된 공간에 있어야 공부가 잘된다는 학생, 편안한 자세로 있어야 머리가 잘 돌아간다는 학생, 친구에게 가르쳐줘야 기억이 오래간다는 학생 모두 자기에게 꼭 맞는 환경이 학교 안에 있는 거죠. 그러니 학습능률이 올라갈 수밖에 없어요. 게다가 개방된 공간이 많다 보니 교사가 학생을 관찰하기도 좋아요. 학생들의 장단점을 잘 알 수 있어 정성평가가 중요한 학생부종합전형에도 더 유리합니다.”
과거 용남고는 폐교 위기에 놓일 만큼 비인기학교였다. 지금은 과밀학급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학급당 23명이 평균 학생 수인 데 반해 이 학교는 한 반이 28명이다. 올해 1학년에 한 한급을 더 늘렸고 3년 뒤에는 학교 증축까지 고려하고 있다. 저출생으로 학교가 하나둘 사라지고 있는 시대, 지방의 작은 마을 학교의 혁신은 부러움을 사고 있다. 김 교무부장은 “지금은 미래 교육 패러다임의 변화에 발맞춰 학교 공간도 변화해야 할 적기”라고 말한다. ‘통제’와 ‘관리’에 초점을 맞춘 학교 공간이 변화해야 교육도 한 걸음 멀리 나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조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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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전면 시행 앞둔 고교학점제
교육방식 변화 앞서 학교 공간 변화 필수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따라 과목을 선택하고 이수기준에 도달한 과목에 대해 학점을 취득해 졸업하는 새로운 교육제도다. 지금까지 고등학생들은 주어진 교육과정에 따라 수업을 들었지만 이 같은 제도가 시행되면 원하는 수업들로 개별 시간표를 구성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윤석열정부는 고교학점제를 교육분야 국정과제로 삼고 2025년 전국 고등학교를 대상으로 시행하기로 했다.
고교학점제가 효율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학교 공간의 변화가 필수다. 학생의 다양한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과목 수가 늘어나야 하고 이에 따른 교실 공간도 확보돼야 하기 때문이다. 또 빈 수업시간(공강)에 쉴 수 있는 교실 밖 휴게 공간, 이동수업을 위한 사물함을 놓을 수 있는 홈베이스 등도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다채로운 교육과정과 교수학습방법으로 수업 운영이 가능하도록 학교 공간이 재구조화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운영하는 고교학점제 누리집(www.hscredit.kr)에서는 고교학점제에 대비해 학교 공간을 혁신한 전국의 우수사례를 살펴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소수 학생들의 수업이 가능한 소인수강의실 ▲여러 과목 간 통합수업을 할 수 있는 융합교과실 ▲학교 간 교과공동과정을 진행할 수 있는 대형강의실 ▲공강에 활용할 수 있는 학습카페 등을 마련한 학교들이다.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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