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권하는 사회 > 정책소식 | 정보모아
 
정책소식

커피 권하는 사회

작성자 정보

  • 공감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btn_textview.gif


처음 커피를 마신 게 언제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고등학생 때였을까. 그때만 해도 10대가 커피를 마시는 일은 별로 없었다. 대학에 가니 건물마다 커피 자판기가 있었고 그때는 그 달고도 끝맛 씁쓸한 황토색 음료를 마셨다. 다들 마시니까 그러지 않았나 싶다. 담배 피우는 친구를 보며 호기심에 담배를 배운 것처럼 커피도 그런 군중심리의 액세서리였던 것 같다.
군대에서는 열심히 커피를 마셨고 열심히 커피를 탔다. 그때 군대 자판기 커피 한 잔이 100원이었다. 내가 근무하던 부대 사무실에선 전국의 장교가 수시로 모여 회의를 했는데 그들 역시 모일 때마다 커피를 원했고 나는 순식간에 커피 여러 잔을 타는 능력을 발휘했다. 나는 커피 타는 것으로 국토방위에 기여했다.
군을 마치고 미국에 짧은 유학을 갔을 때 이른바 아메리카노를 처음 마셨다. 유럽인들이 ‘양말 빤 물’이라고 말하는 그 음료가 아메리카노의 본질이었다(요즘 우리가 말하는 아메리카노와는 완전히 다른 맛이다). 보리차와 색깔은 물론 맛도 잘 구분되지 않는 아주 묽은 커피였다.
대학 졸업 후 신문사에 취직했더니 모든 사람이 낮엔 커피, 밤엔 술에 중독돼 있었다. 사회부장은 늘 벌건 얼굴로 출근해 자판기 커피 두 잔을 합쳐 찰랑찰랑 넘치려 하는 종이컵을 들고 담배 두 대를 연거푸 피우며 하루를 시작했다. 그건 주사 대신 내복약으로 복용하는 일종의 링거였다.
언젠가부터 원두커피가 인스턴트커피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커피 컵을 손에 들고 다녔다. 취업준비생들은 “회사 신분증 목에 걸고 아메리카노 손에 쥐고 시내를 활보하고 싶다”고 말했다. 커피는 음료에서 상징이 됐고 커피 컵에 새겨진 상표는 일종의 계급이 됐다. 아침에 눈을 뜨면 흐느적거리며 부엌에 간다. 물을 끓이고 커피콩을 갈아 내린다. 그 뜨겁고 검은 액체를 한 모금 마시면 비로소 몸에 생기가 돈다. 이윽고 클래식 FM을 틀면 DJ가 새벽부터 청취자들에게 추첨을 해서 커피 쿠폰을 나눠준다. 무슨 종합영양제 선물하는 것 같다.
집에서 회사까지 가는 거리에 무수히 많은 커피숍이 있다. 990원 무인 커피숍부터 한 잔 5000원에 육박하는 대기업 체인까지 아침부터 묻는다. 그냥 가려고? 커피 안 마시고 하루를 시작한다고? 어떤 커피 집은 이런 광고 문구를 내걸었다. ‘괜찮아, 커피는 살 안 쪄.’ 살찌지 않는 음식은 대개 건강식인데 커피가 그 영역을 넘보고 있다.
미국 시애틀에서 시작한 스타벅스의 한국 매장 수가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다고 한다. 미국, 중국, 일본이 우리보다 많다고 하나 인구 대비로 치면 우리가 단연 세계 1위다. 어쩌면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가장 커피를 많이 권하는 사회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수많은 커피숍이 꾸짖는다. 흐리멍덩하게 있지 말고 정신 똑바로 차려. 각성을 하라고!
아무래도 커피를 줄여야겠다.


한현우
신문기자 이력 30년 중 대부분을 문화부 기자로 글을 써왔다. 일간지 문화2부장, 논설위원을 거쳐 현재 문화전문기자로 일하고 있다.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최근글


  • 글이 없습니다.

새댓글


  • 댓글이 없습니다.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