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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의 도시 파리에서 현대무용으로 K-컬처 보여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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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의 4개국 투어 공연은 김성용 예술감독이 국립현대무용단에 부임한 후 예술감독 안무작으로는 첫 해외 투어라는 점에서 기대를 모은다. 사진 C영상미디어‘정글’의 4개국 투어 공연은 김성용 예술감독이 국립현대무용단에 부임한 후 예술감독 안무작으로는 첫 해외 투어라는 점에서 기대를 모은다. 사진 C영상미디어

국립현대무용단 김성용 단장 겸 예술감독

6월 17일 오후 2시. 약속시간에 정확하게 맞춰 김성용 국립현대무용단 단장 겸 예술감독이 인터뷰 장소로 들어왔다. 안무연습실에서 오는 길이라는 김 감독의 호흡이 가빴다. 국립현대무용단 무용수들과 김 감독은 요즘 안무작 ‘정글’의 첫 해외투어를 준비하며 매일 구슬땀을 흘리는 중이다. ‘2024 제33회 파리하계올림픽대회(이하 파리올림픽)’가 열리는 프랑스 파리를 시작으로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카자흐스탄을 순회하는 긴 호흡의 일정이 7월 23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첫 해외투어라 기대가 됩니다. 우리나라 현대무용을 소개하러 가는 것이라 설레고 즐길 수 있는 시간일 것 같아요. 긴장되고 어깨가 무겁지만 우리가 가진 상징성이 무용수들과 제가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정글’은 김 감독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남다른 작품이다. 2023년 국립현대무용단 단장으로 부임한 후 첫선을 보인 안무작으로, 직접 개발한 안무 방법인 ‘프로세스 인잇(process init)’을 통해 창의적인 움직임을 이끌어냈다. 몸의 본능과 생명력이 치열하게 맞부딪히는 ‘정글’로 표상된 무대 위의 해프닝을 원근적 시점으로 들여다보는 작품은 지난해 초연 당시 전석 매진 기록을 세웠다. 이를 계기로 올해는 한층 더 새롭고 깊어진 무대를 선보였다. 지난 4월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공연에서 언론과 평단의 호평을 받으면서 그 존재감을 드러냈다.

‘정글’ 해외투어의 첫 지역은 파리다. 파리올림픽을 기념하는 공연이자 ‘2024 코리아시즌’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파리 13구 극장에서 7월 23~24일 선보인다. 코리아시즌은 한국의 문화를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문화체육관광부의 프로그램이다. 파리올림픽을 계기로 국립현대무용단을 포함한 17개 한국 문화예술기관의 공연과 전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프랑스 전역에서 열릴 예정이다.

이후 7월 27일 이탈리아 체르토사산 로렌조 야외무대에서 ‘정글’을 감상하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세계적인 명성의 대표적 현대무용축제인 ‘임펄스탄츠’의 초청으로 오스트리아 빈 폭스시어터에서 8월 2일과 8월 4일 공연을 올린다. 8월 10일 카자흐스탄에서 열리는 아스타나 오페라 공연은 한국 현대무용이 첫선을 보이는 자리라 의미가 남다르다.

17명 무용수의 개성적 몸짓은 창작의 자유로움을 맘껏 구현할 수 있도록 만드는 김성용 예술감독의 안무 방법론 ‘프로세스 인잇’에서 출발했다. 사진 국립현대무용단17명 무용수의 개성적 몸짓은 창작의 자유로움을 맘껏 구현할 수 있도록 만드는 김성용 예술감독의 안무 방법론 ‘프로세스 인잇’에서 출발했다. 사진 국립현대무용단

2023년 10월 국제현대무용제 공동개막작, 4월 토월극장 공연에 이어 해외투어까지 ‘정글’의 행보가 굵직하다.

국립현대무용단에 취임한 이후 정체성을 공고히 하자는 생각이 있었다. ‘정글’은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 시작한 작품이다. 한 번 공연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참여한 무용수들과 오랜 기간 동안 꾸준히 준비하고 만들었다. 지금은 1년 정도 시간이 지났다.

그 시간 동안 작품이 점점 성장하고 발전한 것 같다.

오늘 연습하면서 무용수들과 마지막 버전을 한국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작품도 아이가 성장하는 것처럼 계속 바뀌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수정도 되고 보완도 된다. 그러다 보면 안 보이던 의미도 보이고 세세한 것들이 등장한다. ‘정글’은 우리 삶과 점점 더 연관되는 것 같다. 처음에 ‘정글’은 무용수의 움직임을 끌어내는 공간이었는데 밖으로 나와 사람들 삶에 적용되면서 자연스럽게 의미가 발전했다.

해외투어 준비는 어떻게 하고 있나? 특히 파리 공연은 올림픽 기간에 열려서 반응이 기대된다.

올림픽이라는 의미와 내용까지 맞출 수는 없지만 우리 문화를 소개하는 자리라고 생각하고 준비하고 있다. 프랑스는 현대무용을 주도했던 엄청난 강국이다. 그들은 우리나라의 현대무용을 접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만든 작품이 그들에게 어떻게 다가갈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더 우리다운 것에 집중하고 있다.

‘우리다운 것’이 뭔가? ‘K-현대무용’의 고유성이나 특징은 뭐라고 생각하나?

비교적 역사는 짧지만 학교에서 무용을 전공한 무용수가 많아서 아카데믹한 편이다. 기량이 좋은 무용수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것이 K-현대무용의 힘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전 세계에서 자기 역할을 잘하고 있는 무용수들이 많고 잘 훈련돼 있어서 작품으로 다가가기에 좋은 환경이다.

‘정글’의 한국적 요소를 꼽는다면?

최근 아시안 무용수들을 모아서 ‘인잇’이라는 작품을 했다. ‘한국인 무용수와 아시아 무용수들이 이렇게 다를 수 있나’라는 경험을 그때 했다. 나라마다 DNA가 확실히 차이가 있는 것 같다. 한국인 무용수들은 뜨겁다. 감정에 몰입하는 무용수 자체가 한국성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정글’은 무용수들이 크리에이터로 자기 역할을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주는 것에서부터 시작했고 그것이 한국성으로 풀이될 수도 있겠다.

그 과정을 담은 것이 본인의 무용 이론 ‘프로세스 인잇(process init)’인가?

대구시립무용단 감독 시절에 만든 방법론이다. 무용수들과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하는데 사람과 환경이 바뀌지 않더라.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다가 ‘무용수 개개인이 다르다’는 명제를 가지고 작품에 적용했다. 무용수 각자와 소통하면서 조금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게 됐고 양방향 소통 속에서 작품이 만들어지고 있다.

4개국 해외투어 공연에서는 어떤 평을 듣고 싶나?

일본에서 활동하던 시절 나에게 큰 영감을 준 선생님이 있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도쿄 아오야마 극장에서 무용을 제작하신 분인데 “왜 인기 없는 무용만 하냐”고 물었더니 “무용은 사람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최고의 예술 장르라는 것을 알게 됐고 그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고 하셨다. 그 말이 최근 이해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잘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관객들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자주 기억한다. 그래야 작품을 통해 성장하거나 다른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공연이 끝나고 바로 박수가 터지기보다는 여운이 남는, 자리에서 일어나기 싫은 그런 감동을 줬으면 한다.

그런데 현대무용은 조금 어려운 게 사실이다. 어떻게 즐기면 되나?

무용은 그림에 가깝다. 무대가 있고 인물이 등장하니까 어떤 시나리오를 상상하는데 무용의 태생 자체가 그렇지 않다. 정확하고 객관적인 걸 전달하는 게 아니라 자기 해석이 들어간 것들이 자유롭게 나오는 것이라서 객관적인 해석이 어렵다. 마치 주관적으로 음식 맛을 평가하는 것과 같다. 그림을 볼 때 화가의 성장환경이나 스토리를 생각하면 더 재미있지 않나. 무용을 볼 때도 ‘이들은 왜 이걸 했을까’, ‘어떤 과정이 이런 춤을 나오게 했을까’를 유추해보면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

추상화처럼 직관적으로 알 수 없는 그림도 많다.

무용도 추상과 닮았다. 사람에 따라 극적인 스토리로 풀기도 하고 음악으로 풀기도 하는데 나는 추상화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가령 추상표현주의 대표 화가 마크 로스코 작품은 심플해보이지만 계속 덧칠을 하지 않나. 그 안에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평생 집중했는데 그런 것과 닮아 있다. 눈에 보이는 것과 해석이 달라진다.

‘그림을 보듯이 작품을 즐기라’는 조언을 했는데 그것이 본인이 무용을 대하는 태도나 가치관이기도 한가?

무용을 35년 동안 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처음에는 무용에 대한 생각이 지금과 달랐다. 요즘은 추상화 같은 것이라고 대답한다. 끌림이나 욕구, 사고가 다 들어간 다음 작품이 나온다. 무용은 구체적으로 계획할 수 없다. 사람이 중요하다. 한 사람이 만들 수 있는 욕구, 집중력, 계속할 수 있는 의지가 더 중요한 것 같다. 무용은 추상에 가깝고 내 작품은 특히 그렇다.

국립현대무용단을 어떻게 이끌고 싶나?

국립현대무용단이 생긴 지 13년째에 다섯 번째 감독이 됐다. 무용인으로서 관심이 있었던 곳이고 꿈이기도 했다. 국립현대무용단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국립’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현대무용단체다. 우리의 역할이 아시아를 대표한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다. 국립현대무용단의 역할이 분명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소임을 다하고 있다. 무용 선진국에는 국립안무센터가 따로 있는데 우리는 아직 두 가지 역할을 다 하고 있는 현실이다. 지역상생 프로그램도 관심이 큰 부분이라 각 지역을 대표하는 극장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다.

임언영 기자

*김성용 국립현대무용단 단장 겸 예술감독

현대무용을 전공한 전문 무용수. 경북예술고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무용학과에서 학사·석사·박사를 거쳤다. 1997년 동아무용콩쿠르에서 최연소 금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일본 나고야 국제 현대무용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입상하는 등 국내외에서 무용가로서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냈다. 대구시립무용단 예술감독 및 상임 안무가를 거쳐 2023년 5월 11일 국립현대무용단 단장 겸 예술감독으로 임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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