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헌신과 희생을 가장 잘 기억해 줄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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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사람들에게 한국전쟁은 잊혀진 전쟁입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벨기에 참전용사들을 잊지 않았습니다. 지난 코로나 때는 마스크까지 보내주셔서 깜짝 놀랐어요. 세상에 이런 나라 없습니다. 이번에 아버지를 한국에 모시면서 아버지의 헌신과 희생을 한국 사람들이 너무나 깊이 기억해 주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지난 2월 4일 레옹 보스케 참전용사가 94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 후, 유엔기념공원 안장을 허락받기까지 거쳐야 할 많은 절차들이 있었다.
그러나 다니엘은 부친의 마지막 소원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벨기에와 한국을 오가는 수 개월간의 서류 심사 과정을 거쳐 5월에 안장 승인을 받았고, 이번 유엔참전용사 국제추모의 날을 맞아 어머니를 대신해 한국을 찾았다.
7남매 중 차녀인 다니엘이 부친을 한국으로 모시는 일에 누구보다 열심을 낸 것은 부친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감명깊게 들으며 자란 덕에 부친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었다.
10대 소년이었던 2차 세계대전 당시 벨기에를 점령한 독일군에 끌려가 강제 노동을 한 부친은 전후, 독일군에 부역했다는 이유로 소련군 수용소에 강제 수용된 적이 있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비참했던 수용소 생활에 죽기를 각오하고 탈출한 부친을 구해준 것은 마침 주위를 순찰하던 미군 헌병이었다. 그런 연유로 미군에 대한 호감을 가진 부친은 나중에 유엔이 미군을 중심으로 공산군이 침략한 한국을 위해 싸울 병사들을 모집한다는 말을 듣고 주저없이 자원했다.
한국에서 부친은 함께 온 전우들은 물론 카투사로 복무하는 한국인 병사와 다른 나라 병사들과도 깊은 우정을 나눴다. 전투 중에 시간이 나면 시장 구경도 하고, 한국군 전우의 가정을 방문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 참혹한 전쟁을 겪은 그에게 한국 사람은 같은 아픔을 안고 있는 가족과 같았다. 그가 한국전쟁에 두 번이나 참전한 것도 그런 연유에서였다.
“아버지가 아주 친하게 지내던 한국 병사가 있었는데 그 집에 찾아가 아이들도 만나고 먹을 것도 사주셨다고 해요. 그 병사는 안타깝게도 얼마 후에 전사했는데 그 일을 너무나 마음 아파 하셨어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레옹 보스케는 제대 후 요리사로 일하는 틈틈이 젊은 시절 자신이 겪었던 이야기를 회고록으로 정리해 놓는 한편 사진도 같이 정리해 놓았다.
다니엘은 이제 벨기에로 돌아가면 부친이 남겨놓은 자료들을 잘 엮어 책으로 펴낼 계획이다. 아울러 한국에서 받은 큰 감동을 이웃과도 나누겠다고 이야기한다.
“이번이 처음 한국 방문인데 강원도 설악산도 가보고 해변도 거닐었습니다. 아름다운 자연과 친절한 사람들도 제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남겼죠. 한국 정부의 배려에도 큰 감사를 드립니다. 무엇보다 이곳 한국에서 아버지의 희생과 용기가 잊혀지지 않고 영원히 기억되리라 생각하니 ‘이국 땅’에 묻히겠다는 아버지의 결심이 충분히 이해가 됐습니다.”
영면에 든 부친이 그토록 원하던 안식처를 찾아 마음이 놓인다는 다니엘의 표정이 환해졌다. 안장식을 끝낸 유엔기념공원 위로 햇살이 따뜻하게 내려앉았다.
※ 국가보훈부가 발행하는 <나라사랑신문> 1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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